노무현 전 대통령이 급서했다. 뜻밖의 비보에 모두가 놀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저를 나와 봉화산에 올라 부엉이 바위 아래로 뛰어내려 자살하기까지는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행했던 경호원이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가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이송해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9시 30분 숨을 거뒀다. 향년 63세를 일기로 한 파란만장한 생애는 그렇게 끝났다.
그는 남다른 인생을 살았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사가 되었지만 7개월 만에 법복을 벗고 인권변호사로 변신했다. 이 때가 인간 노무현의 후기 인생의 항로를 바꾸는 전환점이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으나 그를 정치 스타로 급부상시킨 것은 5공청문회였다. 반골로 일관한 그는 2002년 12월 19일 1201만 4227표(유효투표 48.9%)를 얻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대권의 꿈까지 이뤄냈다. 그러나 그는 2003년 10월 10일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 2004년 3월 12일 국회 탄핵소추 의결로 헌정사상 최초의 ‘권한 정지’ 대통령이 된 데 이어 같은해 10월 12일 수도이전법 ‘위헌결정’까지 받으면서 임기 동안 바람 잘날이 없었다.
그는 임기를 마치고 봉화마을에 돌아간 날 주민환영회 자리에서 “평가는 엇갈리지만 지난 5년 동안 열심히 했다”면서 “정치 이전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야, 기분 좋다”고 고함쳤었다. 하지만 그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받은 거액의 뇌물 수수가 드러나면서 대통령으로서는 세 번째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유서에서 “너무 힘들었다. 원망하지말라. 화장하라. 동네에 작은 비석 하나 세워라.”는 짤막한 글을 남겼다. 인간에게는 영욕과 애증이 뒤따르는 법이다. 인간 노무현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의 대권 도전과 당선은 소외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으나, 대중심리를 이용한 선동가라는 비난도 없지 않았다. 결국 그는 절반의 성공을 안고 우리 곁을 떠났다.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