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이 아무리 썩어도 소금에서 벌레가 생기지는 않는다.” 나이지리아 속담이다. 소금을 세상의 기본과 부정(不淨) 방지의 매개로 본 것이다. 우리나라의 옛 제염방식은 미리 농축시킨 해수를 가마솥에 넣고 화기로 조려서 소금을 구워내는 전오제염법(煎熬製鹽法)이었다. 고려 태조 초기에 염분(鹽盆)을 국유화하고 도염원(都鹽院)을 설치하였다. 전오제염법은 땔감 비용과 인력이 많이 드는데 비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어서 소금 굽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오늘날의 천일 제염은 약 1천년전 이탈리아의 한 승려가 창안한 것으로 중국에는 청조 강희(康熙)연대에 선교사에 의해 전해졌으나, 우리나라는 구한말 때인 1908년 일본인에 의해 개발된 인천 주안 염전이 효시였다. 그 뒤 남양만 근처에 천일염전이 생겨 왜정 연간에 ‘남양소금시대’를 구가했다. 당시 남양 사람들은 남양을 ‘어염식수’의 고장이라고 자랑했다. 이는 풍부한 바다고기와 맛 좋은 소금, 맑은 식수가 있어 살기 좋은 고장이란 뜻이었다. 중국에서는 신하가 임금을 도와 올바른 정사를 펴게 되는 것을 염매(鹽梅)라고 한다. 반면에 뛰어난 인재가 낮은 자리에 오래 있는 것을 염차감(鹽車感)이라고 하는데 이는 준마(駿馬)가 노마(駑馬·걸음이 느린 말)처럼 소금을 나르는 수레라는 뜻이다. 크리스트교에서는 하느님과의 약속을 소금의 계약이라 한다. 반대로 로마인들은 정복한 땅에 소금을 뿌려 경작이 불가능하게 했으니, 소금을 악용한 인종으로 비난받을 만하다.
제염과 관련 있는 옛 용어들이 차츰 없어지는 것도 아쉽다. 예컨대 천일염의 별칭인 ‘별소금’, 염도를 재는 ‘소금기재개’, 소금기가 말라붙은 ‘소금버캐’, 어떤 물건에 소금 기운이 내솟은 ‘소금쩍’, 모래를 걸러낸 물을 일컬으는 ‘초물’ 따위가 그것이다. 한 때 사양산업으로 홀대받던 천일염이 다시 각광받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소금이 짠맛을 잃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