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장이 장묘문화의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수목장은 1990년대 말 스위스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대 김장수 명예교수가 2004년 양평 고려대 연습림 굴참나무 아래 묻힌 것이 효시로 알려져 있다. 화장한 유골을 나무 밑에 묻는 수목장과 달리 시신을 나무 위에 올려 놓아 자연히 살이 썩기를 기다려 뼈를 땅 속에 묻는 수상장(樹上葬)은 오래전부터 있었다.이 방법은 시체를 묻을 땅을 갖지 못한 빈민이나, 돌림병 따위로 죽었을 때 질병을 가져온 귀신을 흩쳐버린다는 의미로 행하여졌으니 바람직한 장묘방식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는 일찍이 수목 신앙과 전설이 많았다. 1917년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거수노수명목지(朝鮮巨樹老樹名木誌)’는 전국의 64종, 5330 그루 가운데서 선정한 3188 그루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데 전설을 가지고 있는 것 만도 1705 그루나 됐다. 거수나 노수는 신목(神木), 당상목(堂上木), 정자목(亭子木), 명목(名木)으로 구별되고, 방수·방풍·풍치·피서·부락엄폐 목적의 나무로는 피서목, 호안목, 풍치목으로 분류된다. 신목은 일명 장군목으로 불리우는데 나무 자체에 신이 머문다고 믿었다. 당상목은 일명 성황목이라고도 하는데 동네와 주민의 안녕을 지키는 수호목으로 여겼다. 정자목은 향교나 사정(射亭), 서당 등의 그늘 마련용 풍치목으로 느티나무가 많았다. 명목은 성현이나 왕족 또는 명승 등이 심은 것으로 임금으로부터 당상 직접을 받기도 하였다.
수목 신앙의 기본 관념은 수목에 신령이 머문다는 신령존재설과 수목 자체가 신령이라고 믿는 수목신격설로 양분되는데 그 어느 쪽이던 우리 조상들은 신목이나 당상목, 명목 등을 끔찍이 아끼고 정중히 모셨다. 그래서 해마다 한 두차례의 동제나 춘계제·하계제·추계제 등을 지냈다. 제사를 잘 지내면 병이 낫고, 역병과 재난을 막으며 장수와 함께 풍년을 맞이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에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재난이 잣고, 역병이 일며 동네와 주민이 언잖은 일을 당한다고 했다. 수목장을 정착시키려면 나무 사랑부터 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