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도덕성을 과소평가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나만의 도덕성을 유별나게 강조하고 과대평가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아예 도덕 불감증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누가 무슨 일을 해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만큼만 깨끗하라는 과대평가 때문에 비롯되는 일이다. 따라서 도덕성의 확실한 실천 이외에 무엇으로도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없다.
이러한 도덕성 문제는 의외로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미래와 관련하여 어떤 이념논쟁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애통한 죽음을 앞에 놓고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갈등이 비등하고 반목이 창궐하고 있다. 애도의 시간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정성을 담보로 한 성찰의 시간이다. 무엇인가를 얻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약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한다. 바라는 바 그 무엇을 얻을 수 있고 그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굳센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믿음의 기초는 높디높은 도덕성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주는 것은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을 주고 믿음을 받는 가장 큰 요소 역시 말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다. 말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말은 귀한 것이고 자신을 나타내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한마디 독설로 상처를 남기고 그 상처보다 더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시대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불쑥불쑥 내뱉듯 쏟아내는 한마디가 얼마나 큰 사회적 파장을 낳게 되는 것인지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지도층 인사를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말본새를 갖추어야 한다. 지도층 인사일수록 다른 사람에게는 모질고 자기 자신한테는 너그럽다. 모든 잘못이 다 남의 탓이고 내 탓은 없다. 날카롭게 꼬집고 비판하기는 잘하지만 칭찬에는 인색하고 제 허물 덮기에만 온 신경을 쓰기 때문에 스스로의 도덕성에 먹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지도층 인사, 정치가들의 속내가 이런 지경이기 때문에 정치는 3류가 되고 정치가는 점점 그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지도자가 필요없는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이 될 것’이란 말이 그래서 더 큰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올바르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으로만 모인다면 굳이 앞장서 이끌어주는 사람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헛되이 품어보는 망상번뇌라 해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사람들의 생각이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