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요십조(訓要十條)’는 고려 태조가 그의 자손들에게 귀감으로 삼게 하고자 내린 유훈(遺訓)을 말한다. 태조는 당초 자손에게만 몰래 전하려 했던 것인데 후일 그 전문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실려 비밀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주요골자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제1조 국가의 대업이 제불(諸佛)의 호위와 지덕(地德)에 힘입었음으로 사사(寺社)의 쟁탈과 남조(濫造)를 금하며, 연등과 팔관회의 주신을 함부로 가감치 말고, 제3조 왕위는 적자적손의 계승을 원칙으로 하되 원자가 불초(不肖)할 때엔 형제 중에서 인망이 있는 자를 택하고, 제4조 거란(契丹)과 같은 야만국의 풍속을 본받지 말며, 제5조 서경(西京·평양)은 수덕(水德)이 순조로와 대업만대의 땅이니 중시하고, 제7조 신하의 곧은 말은 따르고 헐뜯는 말은 멀리하라.
제8조 차현(車峴·차령산맥) 이남의 지역은 산형지세가 배역(背逆)하여 인심도 그러하니 양민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요로에 등용하지 말며, 제9조 사나운 나라가 이웃에 있으니 항상 조심하고 병조들을 잘 돌보아 뛰어난 자에게는 관직을 더 줘라, 제10조 경사(經史)를 읽어 옛것을 거울삼고 지금을 경계할지어다. 왕건이 그 재임 26년(943) 중신 박술희를 내전으로 불러 친히 주었다니 1066년 전 일이다. 태조는 불교를 존중하고 풍수지리설을 혹신(酷信)했는데 이같은 사상은 그의 호국정신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로부터 10세기가 지난 오늘날 역사 학계에서는 후인(後人)에 의한 훈요십계 조작설과 함께 호남에 대한 편견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문제로 삼는 조항은 제8조 공주강 외의 지역은 배역하므로 요로에 등용말라고 한 대목이다. 반론의 요지는 풍수지리를 왕사 도선(道詵)이 봤다하나 왕건이 22세 때 이미 타계했고, 왕건은 삼한을 통일한 군주로 호남 인사를 우대했는데 현실성이 없는 산형지세와 실제와 다른 인심배역설을 거론한 것은 왕건의 본뜻을 왜곡한 후인의 날조라는 것이다. 결코 무리한 주장이 아닌 것 같다.
삼한을 통일한 군주가 지역주의에 연연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이창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