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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

시인이 뽑은 시인 신경림
빈곤의 시대에 글쓰는 사치

 

몇 년 전 시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시인으로 문태준씨가 선정됐다.

참으로 본인에게는 어떤 큰 상보다 영광스러웠으리라.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인데 동도(同道)의 길을 걷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건 무엇보다 유쾌한 일이다.

그런데 이 문 시인이 “대학시절 다른 건 그만두고 신경림의 농무(農舞)만 부지런히 읽으면 최소한 중간치 시인이 될 것이다”며 문학 동아리 선배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도대체 신경림 씨가 누구이기에... 호기심이 생겨 일찍 농무를 읽어 본 적이 있다.

장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오동나무에 매어 달린 가설무대/구경꾼들이 돌아가고 난/텅 빈 운동장/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 집에서 몰래 술을 마신다/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중략)

/보름달이 밝아 어떤 녀석은/꺽정이처럼 울부짖고/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헤헤대지만/이까짓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중략)

/한 다리를 들어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문학, 특히 시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교본(敎本)이 된 농무의 일부분이다.

시를 좋아하지만 평가 할 정도의 소양(素養)에는 턱도 못 미치지만 뭔가 가슴에 뜨거운 것이 왈칵 닿는, 참으로 좋은 시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쉬운 말로 쓰여 있어 더욱 좋았다.

얼마전 신경림 시인의 자전적 에세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란 제목의 책이 신문 광고란에 실렸다.

개인적으로 실타래 같은 조그마한 인연(경기신문 2009년3월23일 소개)도 있고, 호기심이 발동해서 구입했는데 책 제목이 무려 15자다.

80년대의 대표적 베스트셀러인 공지영씨의 소설 제목이 길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겨우(?) 11자다. 책 제목을 반의적(反意的)으로 표현하면 ‘서로 잘 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재수 없다’ 우스개 삼아 해본 말이다.

1·2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는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지만 찢어지게 가난했던 초등학교 입학부터, 2부는 60년부터 문단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화로 구성돼 있다.

어쨌든 1·2부 모두 소설의 바탕은 궁핍, 가난, 이런 것들이 깔려 있다.

등장하는 인물은 환하게 피다가 꺾인 시인들의 기인열전(奇人列傳)으로 천상병, 김관식 등 이제는 전설이 된 시인들의 실수담 비슷한 것으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건 배고픔과 추위, 물질적 빈곤의 시대가 중심일 때 그 곤궁함에도 글을 쓴다는 의식적 사치가 도저히 평생을 월급생활 한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렸다.

하기야 “시는 내 인생의 전부! 나를 살게 하는 존재의 의미!” 신 시인(申 詩人)이 이렇게 말했으니 더할 말이 없다.

농무에 대해서도 민중시의 대표작이라고 또 유산(遺産)과 무산(無産)으로 이분화(二分化)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필자는 농무를 민중시가 아닌 서정시라고 단정한다.

민중적인 정서를 감정으로 표현한 것이지 민중시가 아니다.

왜 문단에서 조차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그리고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더구나 보수와 혁신 이렇게 판을 여러 줄기로 가르려고 하는지?

그리고 신 시인이 덧붙이기를 “딱히 말할 수는 없지만 공부를 많이 하고 기억력 좋은 사람은 시가 잘 안되더라... 이런 이야기와 함께 노벨 문학상을 받지 않은 것 중에도 좋은 작품이 많고 수상작 중에도 3류가 많다. 후보로 거론되고 거기에 매달리는 것은 작가에 입장에서 치욕이다.”

속이 뜨끔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며칠전 신문에 호암상(삼성재단) 문학부문의 신 시인이 수상을 했다.

상금이 2억원이다.

이번 기회에 궁핍, 가난, 이런 것을 좀 희석(稀釋)시켰으면... 술빚 갚는다고 문학하는 사람들에게 호기를 부리는 일이 없었으면...

처음에는 탕진(蕩盡)이라고 했다가 호기란 말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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