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글자, 잘못 쓴 글자를 오자(誤字), 빠진 글자를 탈자 또는 낙자(落字)라고 한다. 단행본, 잡지, 논문집, 교재, 신문에 이르기까지 글자가 쓰이는 간행물에 숙명적으로 따라다니는 것이 오자와 탈자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오·탈자는 용납될 수 없다. 그래서 출판 또는 인쇄업계 종사자들은 오·탈자가 불량상품이라는 인식 아래 오·탈자 없는 간행물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줄기는 커녕 증가하는 추세다. 그래서 생긴 말이 “교열에 왕도(王道)는 없다”인데 따지고 보면 핑계거리 말장난에 불과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인쇄 기술은 전근대적 수준이었다. 기자(작가)가 쓴 원고를 문선공이 한 자, 한 자 채자해서 식자(植字)한 뒤 조판(造版)해서 지형(紙型)을 뜬 다음 인쇄하는 방식이어서 오·탈자가 생길 소지는 너무 많았다. 오·탈자는 엄청난 사건이 되기도 했다. 1955년 3월 17일 당시 공보실장 갈홍기는 동아일보 취체역 사장 최두선과 발행인 국태일 앞으로 한 장의 공문을 보내는데 다름아닌 ‘정간처분 통지서’였다. “동아일보는 1955년 3월 15일자 1면에 ‘한미석유협정초안(韓美石油協定草案)은 이 대통령의 귀경을 기다려 최종적인 재가를 받으리라고 한다’라는 기사 제목을 ‘괴뢰 고위층 재가 대기 중(傀儡 高位層 裁可 待期中)’이라고 표시하였는 바 금일부터 발행 정지한다”는 요지였다. 동아일보는 ‘괴뢰 휴전협정 위반’ 제목을 식자공 실수로 뒤바뀌었다고 해명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이 시절에 자주 생긴 오·탈자 사건 가운데 으뜸은 대통령(大統領)을 견통령(犬統領)으로 오식한 경우였다. 큰 대(大)와 개 견(犬)은 윗머리 점 하나 차이인데 워낙 활자가 작은 데다 마모돼 ‘大’자인지 ‘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필자도 K일보 편집부장 시절 이승만 ‘大統領’을 ‘犬統領’으로 잘못된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신문을 찍어 냈는데 이튿날 경찰서 사찰계(査察係)에 불려가 ‘빨갱이’ 취급을 당한 일이 있다. 실수도 죄가 되는 것이 오·탈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