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가면 옷가게가 있고 식당이 있고 대포집이 있다. 없는 게 없다. 꼭 한 가지 책방은 별로 없다. 대학가 서점도 눈 씻고 애써 찾아야 한 두 곳쯤 눈에 뜨인다.주변 호화로운 카페나 옷 가게에 비해 초라한 모습이다.
젊은이들의 독서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말 도서구입비 지출액은 가구당 1만3천 원 선, 자장면 세 그릇 값도 안 된다. 장신구 구입비 6만 원 선에도 못 미치는 세계 최하위권이다.
BBC인터넷 판에 보도된 내용이다. 책은 교양의 표식이요, 지식의 저장매체다. 책이 주는 지적상상력보다 치기어린 외양의 멋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 젊은이들의 사고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책 읽기는 지성을 갖추는 첫째 조건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삼다’의 원칙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 책 읽기에 정해진 규범은 없다. 많이 읽을수록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꼭 학문에 뜻을 두어야만 책을 읽는 것이 아니란 말로도 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들이 만일 책을 읽지 않는다면 이는 나의 저서가 쓸모없게 되는 것이다. 나의 저서가 쓸모없게 되면 나는 할 일이 없게 되고 병이 들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들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아비를 살리는 일이 아니겠느냐.”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내용이다.
남아수독오거서라고도 했다. 사내라면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은 읽어야 할 것이라는 옛말이 새삼스럽다.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만 비로소 만물만상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책을 읽기는 쉽지만 자기 자신을 읽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뜻이다.
옛말을 끌어대며 억지로 책 예찬론을 늘어놓는다 해서 우리 젊은이들의 독서량이 갑자기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진 않는다.
광속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삼년이 하루 같다고 한다. 그만큼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하면 아예 책과 담을 쌓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국내 대학의 박사과정에는 65%가 직장인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뒤늦게 불붙은 배움의 길이었으면 좋겠는데 대부분은 더 좋은 직장, 더 빠른 진급을 위한 생계수단으로서의 학위취득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순수한 책 읽기와는 또 다른 풍속이다. 어쨌거나 책 읽기는 자신의 지성을 쌓는 가장 중요한 도구와 필수적인 인격수양의 첫째 과정이다.
그 무시무시한 조직폭력배들 사이에서도 책 읽기를 권장한다는 웃지 못 할 얘기도 역시 책에 대한 소중함이 나타나는 대목이다.
‘올 여름나기는 책과 함께’라는 구호라도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