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의 참뜻을 수행하는 곳이 학교요, 교육이다. 따라서 가르친다는 행위 속에는 권위와 계획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릇된 교육제도 하에서는 배우는 자들이 알거나 말거나 학교의 권위와 계획으로 시간에 맞춰주면 그만이다.
교육을 받는 동안 숱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러한 대화자체가 산교육이다. 가정에서건 사회에서건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대화다. 회화는 그 대화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회화를 정규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도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처럼 거세게 몰아붙이던 영어교육열풍이 오로지 회화, 영어회화에 집중돼 있다. 동양에서 세계적으로 영어회화를 제일 잘하는 나라는 필리핀이다. 영어회화를 가장 못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그런데 제일 못사는 나라는 어딘가? 필리핀이다. 제일 잘사는 나라는 일본이다. 세상에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을까? 잘살기 수단 제1호, 나라부강 수단 제1호, 상류계급진입 순위 제1호 등등... 신분변화의 기준이 되다시피 한 영어교육이다. 이런 비유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2009년 들어 광풍처럼 몰아치던 영어가 잠시 주춤한 느낌이다. 학교에서조차 교실 내에서의 영어회화교육에 한계가 있음을 서로 인정했음이리라 믿고 싶다. 교실은 학생들의 영어회화를 배우기 위한 상황과 조건 만들기가 쉽지 않다. 회화는 일상적인 대화, 정해진 규정이 없는 즉흥적인 말하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회화에 익숙해지려면 일상적인 소재로 즉흥적인 대화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생활환경이 필요하다.
원어민 선생님을 교단에 세워두고 판에 박힌, 혹은 교과서에 쓰여진대로 주고 받는 대화는 대화라 할 수 없다. 감정이 전혀 표현되지 않는 대화를 우리는 회화라고 부른다. 무미건조한 반복식, 주입식 교육으로는 영어로 말하기를 이룰 수 없다. 이제라도 진짜 영어대화의 기술향상을 원한다면 지금까지의 영어회화 교육 컬리큘럼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정체불명의 회화교육으로는 더 이상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상의 대화를 매개로 한 글쓰기, 듣기 쉽고 말하기 재미있는 세계역사 등 선생님과 학생들이 직접 대화를 나누면서 배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말로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회화를 어떻게 갑자기 영어로 하라는 것인지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