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노마루(日の丸)는 일본 국기다. 흰 색 바탕에 둥근 태양을 그려 넣은 단순한 디자인이다. 일본 개국(開國)은 1853년 4월 미국 동인도 함대사령관 페리가 4척의 군함을 이끌고 당시 사쯔마번의 영토 류큐(琉球)에 입항하고, 6월에 우라가(浦賀)에 나타나 개국을 요구한 것이 단초였다. 같은 해 7월에는 러시아의 사절 프챠찬이 함대를 이끌고 나가사키(長崎)에 입항해 국서를 전달함으로써 개국은 시작됐다. 그렇지 않아도 서양식 해군 창설을 생각하고 있었던 사쯔마 시마쯔(島津) 번주는 11년 간 미국에서 항해술과 조선술을 익힌 죤만지로를 초빙하는 일방, 서양형 군함 건조허가를 바쿠후(幕府)에 냈다.
바쿠후는 그해 9월 50톤 이상의 대형선박 건조 금지령 폐지와 함께 군함 건조허가를 내주게 되는데 이 때 바쿠후 번주는 국제 관례를 들어 선기(船旗) 제정을 상신하면서 히노마루 도안도 함께 제출했다. 바쿠후는 1854년 7월 11일 노중(老中) 아베마사히로(阿部正弘)의 이름으로 히노마루를 일본 선기로 한다는 요지의 포고를 발표했다. 같은 해 12월 준공된 군함 쇼헤이마루(昇平丸)가 이듬해 시나가와(品川)에 입항할 때 선미(船尾)에 히노마루기를 달고 들어온 것이 히노마루의 효시였다.
1870년 1월 27일 태정관 포고 57호로 ‘상선규칙’이 공포되는데 국기는 아침 8시에 게양하고, 일몰 때 내리며 국기를 게양하지 안했을 때는 해적선으로 간주할 것과 규격 등을 명시했다. 1899년 3월 8일 법률 46호로 현행 ‘선박법’이 공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국적(國籍) 표시라는 순수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히노마루는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조선 침략을 하면서 일본의 군국주의 망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본 군부는 아시아 침략 전쟁 때 히노마루의 흰 바탕에 ‘무운장구(武運長久)’, ‘필승(必勝)’ 따위의 낙서를 해가며 전장에 내몬 애꿎은 목숨들의 산화를 부추겼다. 아직도 히노마루를 국기로 인정하지 않는 일본인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