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시대에 중매쟁이가 신랑 후보의 외모(外貌)를 소개 할 때 ‘신성일 정도는 안 되지만’, ‘신성일 보다 훨씬 잘 생겼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처럼 모든 기준을 신성일에게 맞춘 적이 있다. 그러나 신성일 보다 훨씬 잘 생겼다고 하면 누구든 곧이를 듣지 않고, 그 사람 허풍쟁이... 이렇게 말 할 것이다. 결국 누구도 부정하지 못 할 그 시절 최고의 꽃미남이 신성일이었다.
얼마 전 ‘신성일이 시대를 위로하다’라는 책이 발간됐다.
솔직히 책 제목이 건방지다. 시대가 사람을 위로할 수 있지만, 어떻게 한 사람이 시대를 위로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당대 최고 스타라지만... 어쨌든 요즘 연예인들을 탤런트니 엔터테이너라고 그럴 듯한 말로 불러주지만 조금 전만 해도 통틀어 ‘딴따라’라고 낮잡아 불렀다.
그러나 신성일은 딴따라가 아닌 배우로 우리 머릿속에 각인(刻印)돼 있다. 참고로 이 글을 쓰기 위해 조사를 해 봤더니, 딴따라는 유랑극단이나 서커스단이 손님을 모으기 위해 시가지를 행진하면서 내던 악기소리라고 한다.
신성일씨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은 반듯한 외모 때문에,고생한번 하지 않고 어느 날 감독의 눈에 들어 일약(一躍) 스타가 된 사람. 돈을 많이 벌다 보니 정치적인 야심이 생겨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결국 뇌물 수수(授受)사건으로 감옥에 갔다 온 사람,그리고 현모양처인 엄앵란의 속을 무진장 썩인 사람.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이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 본 뒤 이제까지 내가 생각했던 게 참으로 잘못된 선입견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소위 유복자, 따라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어릴 때부터 애비 없는 자식 소리를 들을까봐 굉장히 엄격하게 성장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하던 계가 깨져서 어머니는 행방불명이 되고 실질적으로 자기가 벌어서 하루하루를 유지해야 하는 소년가장이었다. 절박한 사람이 홀로서는 법을 배운다.
‘검은 장갑 낀 손’이란 노래를 불러 당시 인기를 한 몸에 얻던 고등학교 동창 손시향이란 친구를 길거리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했는데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닌가. 정말로 무안했단다. 그래 너는 노래를 잘했으니 나는 어릴 때부터 잘 생겼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한국 최고의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오기(傲氣)로 배우 전문학원에 입학한다. 우연한 일로 사람이 평생 직업을 선택하고 또 그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끔 운명(運命)이니, 숙명(宿命)이니 하는 말을 믿게 된다.
그 뒤 신상옥 감독 밑에서 무려 3년간 전화받고 청소하는 바닥 생활을 했다. 그렇지만 승승장구 모두 530편의 영화에 출연한다. 고향 대구에 유니버시아드 개최 때 기금을 만들기 위해 광고업자의 도움을 받았다.
대가성이 아니라고 지금도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스스로 검찰청에 출두해서 조사를 받았다고 떳떳하게 말한다.
여자관계, 하늘을 봐서 부끄럼 한 점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소문난 것 하고는 많이 다르다. 방송에서 엄앵란씨가 재밌게 끌고 가기 위해 나를 희생시켜야겠지... 하하! 다음에 태어나서 나하고 살 것이냐고 물어보면 분명 예! 이렇게 대답할거야.
약 20년 전에 방송용 인터뷰를 신청했다. 장소는 경북 안동의 고택으로 사극을 촬영중이었다. 아마 세시간은 충분히 기다렸지 싶다.
또 야간촬영이라 조명을 환하게 밝힌 가운데... 촬영장 한 귀퉁이에 피곤을 못 이긴 엑스트라들이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잠을 자고 참으로 어수선했다.
그런데 몇 신(Scene)이 끝난 뒤 신성일씨가 보이질 않았다. 넓지 않은 곳이라 쉽게 찾았는데 조그마한 구석방에서 대사를 외우고 있었다.
얼마나 진지하던지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조차 모를 정도였다. 한참을 기다리다 어렵사리 인터뷰를 했는데 영화장면에서 그 매끄러운 표준말이 아니고 투박한 경상도 말로 대답을 했다.(그 당시는 동시녹음이 아니고 모든 대사를 성우가 더빙을 했다.) 반듯한 이마, 덜도 더도 필요 없는 입술, 오똑한 코에 피곤하지만 초롱초롱한 눈, 군살하나 없는 몸매... 하여간 같은 남자라도 반할 만했다.
요즘도 매일 하루에 서너시간씩 운동을 하며 자신을 가꾼다고 했다. 부인 엄앵란씨 왈 “최고가 되는 것도, 지키는 것도 힘들지요. 그러니까 신성일인 거에요.” 고등학교 다닐 때 꿈이 법관이나 의사였다고 한다. 그토록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한 사람이고 보니, 아마 어느 분야에서도 최고가 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