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은 ‘근대의 쇼윈도’ 또는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백화점은 변화하는 근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돈이면 못할 것이 없다는 자본주의의 상징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웬만한 중소도시에 까지 백화점이 들어서 있어서 특별하다는 느낌을 갖지 않지만 일제치하 때만해도 백화점은 부자들이나 드나드는 특별한 구매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세계 최초의 백화점은 1852년 프랑스 파리에 세워진 봉마르셰백화점이었고, 동양에서는 1904년 개업한 일본의 미쯔코시(三越)백화점이었다.
조선에서는 대한제국 말기인 1904년 서울(당시 경성) 남대문통에 개업한 조지야(丁字屋)백화점이 첫 번째였다. 1905년 일본 미쯔코시(三越)백화점이 조선출장소로 개설한 미쯔코시백화점, 1906년 개업한 미나카이(三中井)백화점, 같은해 문을 연 히라다(平田)백화점, 1931년 개업한 동화백화점, 같은해 창업한 화신백화점 등 모두 6개였다. 그러나 동화백화점은 개업 1년을 채 못넘기고 화신백화점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일제하의 백화점은 5개였다.
조지야, 미쯔코시, 미나카이, 히라다백화점은 일본인 소유이고, 화신(和信)백화점 만이 박흥식이 경영하는 유일한 조선 자본 백화점이었다.
화신백화점의 전신은 신태화가 창업한 화신상회인데 1929년 세계대공황 때 자금 압박을 받게 되자 박흥식으로부터 수만 원의 돈을 빌렸는데 이를 제때 갚지 못하게 되자 1931년 36만 원을 받고 화신상회의 일체 권리와 재고 상품을 박흥식에 모두 넘겼다. 화신상회를 인수한 박흥식은 같은해 9월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백화점식 경영을 시작했다. 화신백화점은 평양에 화신백화점 지점을 개설하고, 계열회사도 여럿 거느렸다. 화신백화점은 국내 최초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 장안의 명물이 됐고, 시골 사람들의 관광 코스가 되기도 하였다.
해방 후 조지야는 미도파, 미나카이는 한일, 미쯔코시는 신세계로 바뀌고 나머지는 없어졌다. 박흥식이 친일로 몰렸지만 화신백화점을 지킨 것은 자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