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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맹세

이창식 주필

신라 진평왕 때 혈기 왕성한 청년 귀산과 취항은 수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신라에 돌아온 원광법사를 뵙고자 가실사로 갔다. 가실사에 도착한 두 청년은 원광법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희가 속세에서도 정대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참된 진리의 말씀을 들려 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원광법사는 “그렇다면 들어라. 첫째 백성된 도리로서 나라에 충성하고, 둘째 자식된 도리로서 부모에 효도를 다하며, 셋째 친구된 도리로서 신의를 지키고, 넷째 싸움에 임해서는 물러서지 말 것이며, 다섯째 짐승을 죽이되 가려서 죽여라”고 일렀다. 두 청년은 죽을 때까지 다섯 계명을 지키기로 맹세했다.

몇 해 뒤(진평왕 19년) 백제군이 신라를 침공하자 진평왕은 장군들에게 일전을 명령했는데 그 가운데는 귀산의 아버지인 무은 장군도 있었다. 귀산과 취항도 합류했다. 전투는 일진일퇴 했으나 신라군이 불리했다. 무은 장군은 고군분투하다 말에서 떨어져 그 목숨이 풍전등화와 같았다. 이 때 귀산과 취항이 달려와 무은 장군을 후방으로 이송하고, 백병전을 벌인 끝에 백제군을 물리쳤다.

전쟁터에는 귀산과 취항은 미소 진 얼굴로 누워 있었으나, 이미 죽은 뒤였다. 두 청년은 나라에 충성, 부모에 효도, 친구의 신의, 임전무퇴의 맹세를 지켰다.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국군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6.25전쟁 때 목숨을 초로와 같이 조국과 민족 앞에 바쳤다. 그 6.25가 내일 모래, 글피면 59년째가 된다. 그때 그 전쟁터에서 젊고 패기 넘치는장병들이 인민군과 싸우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화, 민주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파란과 시련은 있었지만 이만한 나라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포기를 모르는 우리 민족 특유의 끈기와 불퇴전의 용기 탓이었다.

그런데 6.25한국전쟁을 ‘남침’ 아닌 ‘북침’이라고 뇌까리는 친북파가 아직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분노에 앞서, 역사 바로 알기 차원에서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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