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挫折), 역경(逆境)이란 단어가 있다. 좌절을 딛고, 역경을 이기고, 이 말 뒤엔 반드시 딛고 또는 이긴다는 말이 붙어야 제 맛이다.
말이 쉽지 인생 도처에 실패의 위험성이 크게 입 벌리고 있다. 설산(雪山)의 크레바스(crevasse)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빠져나오기 힘드나 가끔 좌절과 역경을 이긴 사람들의 이야기에 뜨거운 갈채를 보내는 건 반전(反轉) 드라마를 보는 재미와 같다.
포기할 쯤 스스로가 어금니 물고 채찍질하고 독려(督勵)해서... 하여간 보통 결심이 아니면 빠져나오기 힘든 법이다.
모진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월계관(月桂冠)이다.
얼마 전 둘째 놈이 “심심하고 우울할 때 보세요” 하면서 DVD 한 장을 건넸는데, ‘더 레슬러(the wrestler)’였다.
대강의 스토리는 익히 떠들썩한 신문 광고를 통해 알고 있다. 바닥에는 관객들을 유혹(誘惑)하기 위한 과장된 내용이 깔려 있지만 황혼기에 들어 선 중년의 프로레슬러 이야기다.
물론 사랑 이야기도 드문드문 섞였고 외동딸과 부녀지간의 애증도 간혹 섞여 있지만 우리나라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 만큼은 누선(淚腺)을 자극하지 않는다. 아마 감상적이고 섬세(纖細)한 동양인들과는 달리 가정사에 좀 무딘 서양 사람들이기 때문에 구성이 치밀하지는 못 한 것 같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우리 나이의 사람들에겐 공통된 과거가 있다. 잡지에 실린 조그만 사진을, 그것도 무슨 큰 범죄인양 아주 가까운 친구들끼리 은밀한 곳에서 둘러보며 낄낄댔던 그렇고 그런...
이 영화의 주인공 미키루크! 요즘 말로 하면 그 시절 섹시 가이가 미키루크였다.
80년 후반 공전의 히트작 나인 하프 위크. 세련된 도시 남녀의 9주일 반 동안의 격정적이고 많이 일탈(逸脫)된 사랑 이야기. 상상도 못할 장소(거리)에서 대담하게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는 장면, 그때 기준으로 충격적인 영화였다.
참으로 순진하던 시절이었다. 함께 영화를 본 친구 한 명이 느닷없이 “나 미국 가서 영화배우 할래”라고 말했다. 참고로 그 친구 키가 170cm도 되지 않고 가장 자주 쓰는 영어가 오케바리였다.
그리고 섬타임(sometime)도 소메티메로, 호프(hope)는 호페로, 모든 영어를 스펠링대로 발음했다. 더욱 심한 건 땡큐(thank you)도 탱크이유로 발음했다.
어쨌든 한 시대의 우상(偶像)이던 미키루크가 마약을 하다 수감되고 또 권투선수로 경기에 나가 얻어 터져 몇 번의 성형수술을 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프랑켄슈타인 형(形)이 되었다는 가십도 들었다.
그러나 이 영화 한 편으로 화려하게 부활해서 심지어 이 영화 ‘더 레슬러’는 ‘미키루크의 미키 루크를 위한 미키 루크에 의한 영화’란 극찬을 받고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거머쥐었다.
때리고 부수고 던지는 프로레슬링 영화에 전혀 대역(代役)을 쓰지 않았다는 점도 감안됐다고 한다.
두 가지 의문이 남는다. 막장까지 간 미키루크가 다시 솟아난 동기, 그리고 동인은 무엇일까? 내 생각이다.
주관적인 분석이다. 다름 아닌 세상의 경멸과 멸시에 대한 오기(傲氣)가 아니었을까? 미키루크는 이미 흘러간 시대의 스타라고 손가락질하는 세평에 대부분 이 정도면 자살을 택하는데 “웃기지마라. 나 아직 안 죽었다.” 이런 반감이 아니었을까?
두 번째 의문은 왜 둘째 놈이 “우울할 때 보세요”란 단서를 붙이면서 DVD를 건넸을까? 졸업은 다가오고 취직에 초조한 입장인 자식 놈이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 뭔가 얻긴 얻은 게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