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와 노총이 비정규직 관련법 개정 협상에 실패하는 바람에 2년의 계약기간을 넘긴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언제 해고통지서가 날아올지 모르는 벼랑 끝에 선 처지가 되고 말았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올 3월 현재 전국 비정규직 근로자는 537만4000명, 이 가운데 도내 비정규직만도 122만4000명이나 된다. 비정규직 1명이 거느린 부양가족을 평균 2명꼴로 치면 전국적으론 1612만2000명, 도에서는 367만2000명의 가족들이 밤잠을 설쳐가며 불안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게 됐다.
이번 비정규직법 개정 불발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대 노총의 평행선 달리기식의 고집불통의 산물이다. 한나라당은 대량(70만-100만) 해고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2년 유예를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6개월, 노총은 수용불가로 일관했다. 실정법은 지키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현행법대로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는 민주당과 노총 주장은 논리적으로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법대로’의 장미 국면만 보았지, 기업주들이 기업의 존립을 위해 들고 나올 수밖에 없는 ‘해고’라는 처참한 국면은 애써 외면하고 말았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은 ‘죽는 것보다는 까무러 치는 것이 낫다’는 판단 아래 유예안을 내놓았지만 실정법을 훼손한 셈이 되었으니 잘한 일도 아니다.
문제는 여야와 노총이 입씨름만 하고, 기업과 비정규직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협상 부재의 결과가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려했던 해고사태는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다. 비정규직법 시행 하루 전날인 6월 30일, 인천지하철공사와 경정비업무계약을 체결한 (주)코레일테크와 중장비 업무계약을 맺은 (주)에스디엠케이가 용역 노동자들과의 재계약 폐지를 통보하고, (주)코레일테크 21명, (주)에스디엠케이 27명 등 48명을 해고했다고 밝혔다. 경정비와 중장비 업무는 지하철의 안전운행을 위해 매우 중요한 직무임에도 불구하고 두 회사는 뽑지 않기를 바랬던 ‘해고의 칼’로 48명의 밥줄을 끊고 말았다.
이것이 마지막이었으면 오죽이나 좋겠는가마는 유감스럽게도 이는 해고 회오리의 신호탄일 가능성이 높다. 정치의 책무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과연 제구실을 했는가. 아니다. 노총의 존재 이유는 노동자 권익옹호인데 과연 벼랑 끝에 몰린 비정규직 동료들을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양보하는 애정은 보였는가. 아니다. 두 집단은 앞으로 일어날 비극적 사태에 책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