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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김삿갓 문학관

이창식 주필

‘천하를 두루 돌아다녀도 모두 너를 환영하고 나라와 집을 흥하게 하니 네 힘이 가볍지 않구나. 갔다가도 다시 오고 왔다가도 다시 가니 산사람도 능히 죽이고 죽는 사람도 살리는구나.’, ‘네 다리 소나무 상에 놓인 죽 한 그릇,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 함께 노닐고 있네. 주인이여 무안해 하지마오. 나는 청산이 뭍에 거꾸로 비치는 것을 좋아한다오.’ 앞의 것은 ‘돈(錢)’, 나중 것은 ‘죽 한 그릇(粥一器)’ 제하의 김삿갓 한시를 의역한 것이다.

난고(蘭雇) 김병연은 선천 부사였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 난 때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게 되자 노복 김성수의 도움으로 형 김병하와 함께 황해도 곡산에 숨어 살았다. 조정이 투항죄는 김익순에게만 묻고 가문은 폐문하기로 결정하자 경기도 광주, 이천, 가평을 거쳐 강원도 영월에 정착했지만 폐적을 당한데다 반역 죄인의 후손인 까닭에 벼슬길에 오를 수 없었다.

김병연은 훗날 영월도호부 백일장(과거)에 응시하여 장원급제하였으나 글귀 내용이 조부 김익순을 규탄한 것임을 알고, 20세 무렵 삿갓에 죽장을 벗삼아 조선 팔도를 누비는 방랑 길에 오른 것이다. 그는 가는 곳마다, 발길 닿는 데마다 해학과 풍자, 재치와 풍류가 담긴 시를 썼다. 평생 시를 썼지만 시집이나 문집을 남긴 일이 없어서 오늘날 전해지는 시들은 용케 남아 있는 소수의 자필 시이거나 구전(口傳) 또는 필사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 견해다.

김삿갓은 만년에 도산서원 아랫마을과 곡산 등지에서 훈장생활을 하다 전라도 화순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훗날 둘째 아들 익균이 영월군 하동면 노루목 골짜기로 이장함으로써 기나긴 방랑의 여정은 끝이 난 것이다. 영월 김삿갓 유적지는 단아한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 2003년 10월 개관한 ‘난고 김삿갓 문학관’도 볼만하다. 육당 최남선이 현대시의 개척자로, 김소월이 민요적 서정시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김삿갓은 풍자·해학·풍류시로 고단한 민중의 삶을 대변하였으니 권력과 독선에 도전한 민중시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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