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회자된 것이 ‘고려장’이었다. 알다시피 고려장이란 늙은 부모를 깊은 산 속에 내다버려 죽게 한 야만적 장례방식을 말한다. 그런데 역사 학자들 말에 따르면 고려장 제도는 실제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설화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고려장 설화는 약 30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유형으로 다음의 두가지를 꼽는다. 첫째 유형은 어떤 사람이 늙은 아버지를 산에 버리기 위해 지게에 짊어지고 산으로 가는데 아들이 따라갔다. 깊은 산에다 아버지를 버리고 지게를 놔둔 채 하산하려니까 아들이 아버지더러 지게는 가지고 가자고 했다. 아버지가 그 까닭을 묻자, “아버지가 늙으시면 제가 아버지를 이 지게로 내다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버렸던 늙은 아버지를 도루 지게에 지고 집으로 모셔와 오래토록 봉양하였다는 것이다.
둘째 유형은 우리나라가 중국의 속국으로 지낼 때 중국이 우리나라를 깔보고 국왕에게 수수께끼를 내려서 풀도록 하였다. 수수께끼를 풀면 나라가 살고, 못 풀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수수께끼인 즉 아래, 위 굵기가 같은 통나무를 잘랐을 때 어느 쪽이 뿌리가 있던 쪽이고, 어느 쪽이 가지가 있던 쪽이냐를 알아 맞추라는 것이었다. 조정의 군신·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심했지만 답을 찾지 못해 근심걱정이 태산 같았다. 어느 고을의 한 촌노가 이 말을 전해 듣고 “통나무를 물에 띄워 보아라. 무거운 쪽이 갈아 앉게 마련인데 그 쪽이 뿌리 쪽이고, 뜨는 쪽이 가지 쪽이다”라고 일러 주었다. 촌노 덕분에 나라가 살았다 하여 상을 내리고 노인을 공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전 백혈병에 걸린 친구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 갔는데 면회를 하지 못했다. 무균실이라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환자 치료를 위해 당연한 조치다. 그러나 가족도,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의사와 간호사만 쳐다 보고 있는 그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면회금지’ 표찰을 보면서 신종 ‘고려장’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어 언짢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