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을 분담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나의 꿈입니다. 그 꿈을 위해 살아왔지요. 하지만 이제는 나이 들어 병도 들고 힘도 없어요. 아마 나이는 못 속이는 것 같아요. 공수레 공수거란 말이 있지요. 세상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이제 나의 인생을 마감하는 종착역이 머지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의 마지막 가진 것도 정리하려 합니다. 내가 죽거든 내 전세금(1천3백5십만원)을 지역의 저소득층을 위해 써 주십시오”
동두천시 상패동 32-9번지에 홀로 사는 남택윤(72·사진)씨.
당뇨, 고혈압, 협심증, 만성기관지염, 치매 초기증상까지 보이는 남택윤씨는 젊은 시절 하사관으로 전역 후 퇴직금으로 생선 장사를 하다 실패한 후, 1985년3월 동두천시에 정착하게 된다.
당시 거주할 곳이 없어 일명 자활근로대라는 곳에 거주하며 피혁공장 생활을 하다가 자활근로대에서 함께 생활하던 김모씨의 갑작스런 죽음을 보고 자신의 돈 100만원으로 손수 장례를 치룬 후부터 “이웃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내 한 평생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봉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1992년 남택윤씨는 자신의 시신을 해부용으로 써 달라며 서울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했으며, 1993년 6월에는 사랑의 장기기증본부에 장기를 기증했고, 그동안 헌혈(24번)을 통해 받은 증서를 백혈병환자와 헌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다.
남택윤씨는 1962년부터 환경감시요원, 청소년선도위원(4년), 경기도민원모니터요원(13년)으로 활동해 왔다.
1985년부터 이웃과 사회를 위해 자신의 생활이 없이 살아온 남씨는 시장, 국회의원, 도지사 등에게 수십차례 표창을 받았고 신문과 방송에 그의 봉사생활이 소개된 일도 120회나 된다.
남택윤씨는 이러한 언론의 보도 때문에 주위의 시선이 자기 자신을 나타내려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받았다.
이에 남택윤씨는“나는 세상에 혈육도 친척도 없습니다. 명예도, 누구에게도 내 모습을 자랑할 만한 사람도 없어요. 내 스스로가 언론에 보도를 요청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좀 있는 자들이 이웃에 나눠주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작은 밀알의 역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하나뿐입니다”라며“인생의 종착역에 서서 내가 죽은 후에 이런 사람도 이웃을 위해 봉사를 했구나, 하는 느낌만이라도 사회에 남아있기를 간절히 바랄뿐입니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