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地名)은 특정한 지역을 구별하고 이해하기 위해 붙인 고장의 이름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 신앙, 풍속, 놀이 등의 정서가 함축된 표상이다. 따라서 지명은 지역의 내력과 역사를 고려해 지어져야 하고, 일단 지어지면 지역민뿐만 아니라 지역의 명예와 자존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지명 결정은 매우 신중을 기해야 옳다.
지명 짓기와는 다소 경우가 다르지만 최근 오산시와 철도공사 및 철도시설공단 사이에 경부선 전철1호선 ‘세마역’과 ‘오산대역’ 사이에 신설하는 역사(驛舍) 명명(命名)을 둘러싸고 말다툼이 한창이다. 오산시의회는 지난 8일 신설역명을 지역 유래에 부합되게 ‘삼미역’으로 해야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국토해양부와 경기도 등에 전달한 바 있다. 10일부터는 시민단체까지 가세했다. 인구 15만의 소도시가 이토록 강력히 들고 나오는데는 그들 나름의 염원과 양보할 수 없는 정체성 문제가 있을 법한데 보도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첫째는 신설 역사가 오산시 관할 안에 세워지는 만큼 오산시 지명에 따라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역명 제정의 유력한 근거가 될 수 있다. 둘째는 역명이라 할지라도 지명 유래와 역사를 무시해서는 안되는 법인데 신설 역사 터가 옛 송미(松美), 오미(梧美), 죽미(竹美)로 불리워온 고장인 만큼 삼미(三美)로 해야 옳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특히 2004년 4월 설치된 병점차량사업소(병점철도기지창)가 오산시 외삼미동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성시 관할명인 ‘병점’으로 한 것부터가 현실을 외면한 잘못이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반해 화성시는 오산시처럼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신설역이 신도시 동탄과 지근 거리에 있고, 수요가 많다는 이유를 내세워 ‘동탄역’ 또는 ‘능동역’으로 명명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나라 지하철은 1974년 8월 15일 개통된 이후 지하철 역명을 제정할 때마다 오늘날의 오산시와 같이 지역 및 지역주민과 철도당국이 티격태격한 일이 한 두 번 아니였다. 비슷한 예로 경수선 ‘성균관대역’의 경우 당시 수원시 지명위원회는 율전리(栗田里)라는 지명을 존중해 ‘율전역’ 또는 ‘밤밭역’으로 제정하기를 원했으나 철도당국은 성균관대역으로 명명했다. 상업성에 무게를 둔 결정이었다. 오늘날 도처에 대학역이 생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는 수요가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유래, 지역주민의 정서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때다. 철도당국은 오산시민의 간절한 바람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