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 조선시대 문신 율곡이이 선생은 10만 양병설을 제기했다. 그로부터 12년 뒤 임진왜란이 터졌다. 그때 상황이 400년 뒤에 재현한 것은 아닐까? 물론 사람들이 피 흘리는 그런 전쟁은 아니었다. 이상희 전 과기부장관이 13년 전 10만 해커 양병설은 율곡의 그것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웬 뜬금없는 소리냐고 일언지하 묵살 당했던 그 상황과 흡사하다.
지난 7일부터 이어진 세 차례 디도스 공격이 큰 피해 없이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완전히 끝이 났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제 또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도처에 남아있다. 이상희 전 장관의 13년 전 주장은 이렇다. 앞으로 전쟁은 사이버전쟁이 될 것이기에 전자군복무제를 도입해 해커부대를 창설하자는 것이 주요골자였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고 콧방귀조차 없었다. 그것이 꼭 13년 만에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한 과학자의 예언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일단은 큰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 큰 다행이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또 새로운 형태의 공격가능성을 아무도 예측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수사당국이 공격진원지를 추적하고 있으니 머잖아 그 결과가 나오긴 할 것이다.
국가정보기관에서는 북한쪽의 공격이라느니 하지만 정확한 증거는 없는 형편이다. 그 대책이 너무나 안일하다.
일부 보안업계에서는 이번 공격의 양상이 치밀한 사전계획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분석을 내 놓았다. 다른 유형의 사이버테러도 우려하고 있다. 우리를 공격한 해커가 정부 및 업계의 대응을 비웃듯 3차까지 공격한 것만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아무런 대책이 없다가 느닷없이 한방 먹은 셈이다. 우리 스스로가 자초한 본보기였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1999년 체르노빌 바이러스 대란을 겪었고 2003년에는 1.25인터넷 대란을 겪은 바 있다. 그러나 사고는 사고일 뿐 사고 이후에도 어떠한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번 7.7인터넷 대란은 특정한 국가와 정부기관을 공격해서 일어난 보안사고이다. 철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개인컴퓨터로 국가기관을 공격하는 시대다. 멍하니 앉아서 “그러지 말라”고 하소연 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 네티즌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10만 해커 양병설’에 한 번쯤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