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각각의 질병에 대해 수많은 약을 접하게 되는데, 그 약의 진정한 효과를 기대하려면, 철저한 복용방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중요할 것이다.
가끔 어른 환자들이 처방전을 갖고 와서 ‘가루약으로 조제해 주세요!’라고 부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어린 아이들은 어쩔 수 없지만, 어른들이 요구하면 난감할 때가 있다.
알약을 못 먹는 어른이 고혈압, 전립선 비대증 같은 병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왜냐하면 고혈압 치료제, 전립선치료제는 지속시간을 고려해서 만든 약인데 이럴 때도 약을 갈아달라고 요구하면 약사님이 걱정하는 부분은 약의 제형이 파괴되어 효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부작용은 어떨지를 염려하게 된다.
복용한 약은 흡수, 분포, 대사, 배설이라는 네 가지 단계를 거쳐 그 생명을 다한다.
‘흡수’라 함은 위, 소장, 대장 전반에 걸쳐 약이 흡수되는 것을 말하며, ‘분포’는 흡수된 약물이 혈관계에 흡수되어 혈액을 따라 각 조직에 이행하는 현상을, ‘대사’는 약의 독성을 제거하는 단계로 간에서 이루어지며, ‘배설’은 말 그대로, 대소변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말하며, 타액, 유즙, 땀 등으로 배설되기도 한다.
‘흡수’단계에서 약이 고유 효과를 보려면 여러 장애를 만나게 되는데, 위산의 농도, 위에서 소장으로 갈 때 위 배출시간, 위 속의 내용물, 소장에서 간 문맥을 거쳐 간에서 일어나는 1차 대사 등 여러 장애를 거쳐야 하므로 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효과를 보려는 위치에 얼마나 약의 유효농도가 있는지 이른바 생체이용률을 고려하여 약을 설계하고 만든다.
여기서 약사들을 비롯한 여러 과학자는 신약을 개발하는 것과 같은 성분의 약이라도 ‘흡수’단계에서 어떻게 하면 치료 효과를 높일지를 약의 제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위에서 녹지 않고 소장에서 녹게 되는 장용정, 장용캅셀, 알약을 특수 처리하여 약물의 방출 속도를 조절하는 약들이 있는데, 이른바 약물전달시스템(Drug Delivery System:DDS)이라는 학문의 영역이 있어 위에서 음식물의 존재 여부, 환자의 질병상태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효과적으로 약이 방출되어 흡수되도록 약의 제형을 만드는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약물전달시스템 기술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붙이는 멀미약, 붙이는 관절치료제,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전립선비대증 등 여러 질병 치료제에 응용되고 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날아오는 미사일을 맞춰 잡듯이, 아픈 부위만 약이 도달하여 효과를 본다면 적은 양으로도 얼마든지 치료 효과를 높일 수가 있을 것이다. 만성 질환에 약의 방출 속도를 조절하여 하루 한 번, 또는 한 달에 한 번 먹으면 환자의 불편함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그 약의 순수 효과를 발휘하도록 설계된 경구용 약을 갈아서 가루로 먹게 된다면 그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돌격선의 개념으로 거북선을 만들었는데, 그 지붕을 뜯어버리고 철갑을 없앤다면 돌격선이 아닌 단순히 바다 위에 떠있는 배에 지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제는 아이의 앞날을 위해서 어렸을 때부터 알약을 먹는 습관을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
혹시 목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을 하시는데, 부모라면 당연히 걱정할 듯싶다. 식도는 크게 세 가지 근육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윗부분은 ‘가로무늬근’이라 하여 의지에 달렸으며, 식도의 아랫부분은 ‘민무늬근’이라 하여 의지에 관계없이 위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최소 10살이 지난 아이에게 알약을 먹을 수 있게 자신감을 부여하고 가르쳐 주어 어른이 되었을 때 잘 설계된 제형을 부수지 않고 복용한다면, 약물의 고유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일선에 계신 약사님들은 이런 부분을 다 알고 있기에 주의 사항에 대해 약사님들의 설명을 잘 듣고 복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함부로 약을 깨물어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