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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원칙(原則)과 융통(融通)

 

별일이 없으면서 매일 전화를 하고 수화기를 잡으면 수다라고 할 수밖에 없는 내용으로 5분을 넘기는 친구가 몇 명 있다. 그러나 사소한 일로, 참으로 사소한 일로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가랑비에 화롯불 꺼지듯 좋은 사이가 스멀스멀 가라앉아 버릴 수 있다. 분명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한쪽이 그러려니 하고 이해를 해주니, 이제까지 해오던 평상의 관계만 소위 냉각기(冷却期)를 유지하다 보면 우정이 회복될 동기(動機)가 분명히 있을 텐데...

누군가 우정을 길이라고 했다. 자주 왕래하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버린다고...

‘사람관리’에 관한 일화

내게도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사람관리’에 관한 일화가 있다. 하기야 관리(管理)란 말이 거슬리지만 본시 먹은 마음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않으면 무성의 혹은 냉정하다고 판단해 버리고 마는 각박한 세상에 얼핏 관리란 말 외에는 정확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컴퓨터가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정형외과 전공 의사 친구와 이런저런 일상 잡담을 즐겼다. “요즘 뭐하고 지내?”, “나 요즘 컴퓨러에 흠뻑 빠졌어.” 컴퓨러가 컴퓨터의 제대로 된 발음인지 알고 있었지만 아니꼬아서 일부러 “컴퓨러가 뭔데... 아 컴퓨터, 쉽게 발음해라 혀에 쥐나겠다.” 끝내 나는 컴퓨터라 발음했고, 그 친구는 컴퓨러로 발음했다.

아니꼬움이 평행선(平行線)의 시초였나 보다. 어쩌면 앞서가는 친구에 대한 시샘이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영어 발음 때문만이 아니었다. 서로 생각도 달랐다.

한참 골프가 유행하던 무렵, 갈비뼈가 부러져 진통제(鎭痛劑)를 맞으면서까지 연습장에 나가는 게 못 마땅했다. “뭐 먹고 살 것이라고” 이렇게 핀잔을 주면, “한번 시작했는데 끝을 봐야지.” 철저함에 질려 버렸다.

병원에서도 가혹하리만큼 소위 스텝들에게 원칙(原則)을 요구했다. 원칙을 입에 달고 다녔고 한다. “의료 종사자는 원칙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 사는데 원칙만이 지고지선(至高至善)이 아닌데...

물론 원칙이 필요한 때도 있다. 일과 생활의 질서를 위해서는 원칙이 중요하다. 그러나 원칙만으로 모든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함께 서울로 갈 일이 있었는데 도착해 보니 머리도 벗어지고 얼핏 봐도 우리보다 훨씬 연배(年輩)의 누군가가 절도있게 인사를 하면서 역 출구에서 우리를 맞았다. “오늘 제가 모시겠습니다(제약회사 상무)”, 그러자 의사 친구 왈 “무슨 말씀이에요... 제게 쓸 돈이 있으면 약값을 할인하세요. 이건 원칙이 아닙니다” 예의원칙 타령이었다. 그는 머쓱한 얼굴로 물러났다. “틀림없이 오늘 저녁에 술접대하고 봉투를 내밀 게 분명해. 제약회사 리베이트 있잖아, 그래서 따끔하게 거절한 거야...”

세월과 함께 변하는 원칙

아무리 칼자루를 쥔 의사이고 또 제약회사 상무관계라지만, 훨씬 나이 많은 사람에게 그리도 매몰차게... 하여간 옆에서 보기 무안했다. 그리고 솔직히 속으로 잘 차려진 밥상이 날아간 아쉬움도 컸다.

그러나 너무 원칙을 지키다 보니 직원들의 불만도 매우 컸다. 다른 의사선생들은 받은 봉투로 갈비도 사주고 하는데... 원칙만 찾고 엄하다 보니 인기는 땅바닥을 헤매고 오직 융통성없는 의사라고 뒤에서 손가락질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환자들에게 실력있는 선생님이라고 존경 받았다. 그런저런 이유로 오랫동안 근무하던 병원을 떠났다. 자연스럽게 소식이 뜸했는데...

요즘 여·야가 대립각을 세우는 비정규직 문제도 따지고 보면 원칙과 융통의 문제이리라. 요즘 원칙을 주장하는 어떤 정치인과 느낌이 얼마나 닮았는지 갑자기 보고 싶어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왜 전화 자주 안하느냐?” 이 말과 함께 다짜고짜 욕설이 따라 붙었다. 전에 못 보던 행동이다. 얼마나 살갑던지.

그래 허물없는 사이가 되려면 너무 예의를 찾는 법이 아니다. 원칙을 살짝 어겨도 되는 법이니! 원칙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융통이란 이름으로 마모(磨耗)가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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