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에서 중소도시로 영역을 넓혀가던 대기업 수퍼 체인이 이젠 동네 골목 안까지 파고 들고 있다. 그래서 생긴 결과는 뭔가. 동네 골목에서 수 십 년 동안 동민과 애환을 함께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 오던 올망졸망한 구멍가게는 하루아침에 없어지고, 큰 점포를 차지한 대형 수퍼가 동네 상권을 독식하는 포악한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아우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형 유통업체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근근이 버텨온 재래시장도 위협 받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재래시장 근처에 대형 수퍼가 들어서면 바로 그날이 재래시장은 제삿날이 될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가 강자는 살고 약자는 죽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원리라고는 하지만 이 경우는 너무 지나쳐 보인다.
위기감을 느낀 소상인 권익단체인 동네 수퍼마켓협동조합들이 대기업 수퍼 체인의 골목 안 진입을 용납할 수 없다며 집단 반대운동에 나섰다. 무기는 ‘사업조정신청’이다.
현재 기존 기업형 수퍼마켓(SSM)을 상대로 사업조정신청이 이뤄진 곳은 3곳, 개설 예정인 업체를 상대로 한 것도 3곳이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의 조합은 물론 조합이 없는 지역에서도 동참할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어서 구멍가게와 대형 수퍼 체인 간의 일전은 불가피하게 됐다. 문제는 사업조정신청에 대해 관계당국이 어떤 조정안을 내놓을지에 있다. 일본의 경우 개인이건 대기업이건 점포 면적 1000㎡(약300평)이상의 수퍼 체인을 개업하려면 자치단체에 신고하고 반드시 주민 설명회를 가져야 한다. 프랑스는 1000㎡이상의 매장을 낼 때 지역상업설치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같은 절차를 법으로 정한 것은 소상인을 보호하려는 뜻도 있지만, 지역 경제가 대기업에 의해 독점되는 폐단을 막아 상생을 도모하고자 하는 정책적 배려가 깔려 있다. 물론 규제가 만능이 아니다라는 반론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정은 다르다. 구멍가게와 재래시장에 목을 매다시피 한 영세 상인이 너무 많다. 그들은 하루 벌어 하루를 산다. 인간의 행복권과는 거리가 멀다. 대형 수퍼 체인 하나가 생기면 여러 개의 구멍가게가 없어지고 재래시장은 파리를 날릴 것이 뻔하다. 정부가 소상인들의 절규를 무심히 듣고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