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철한 도덕성과 앞장서 실천하는 봉사의 자세, 이른바 지도자들의 으뜸덕목이다. 그러나 진정 좋은 세상은 지도자가 쓸데없는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일 터이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다 세상의 주인이 되고 제 몫을 해내는 세상이라면 굳이 지도자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헛되이 품어보는 망상이기는 하지만 각자가 주인이 되어 올바르게 움직이고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굳이 앞장서 이끌어주는 지도자가 쓸데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로마시대 왕과 귀족들의 솔선수범하는 자세는 역사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걸 맞는 도덕적 봉사를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표개발을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에 재미있는 결과가 발표됐다. 우리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수는 100점 만점에 26.48로 나타났다.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낮은 수치는 우리 사회의 고위층으로 인식되고 있는 정치인, 고위공무원, 대기업 CEO 등에서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과인 것이다. 반면 시민단체간부, 노동조합간부, 대학교수 등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제 의무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사람이 물에 빠졌다. 제일 먼저 구해내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 ‘정치인’이라 했다. 시중에 흘러 다니는 우스갯말이지만 곰곰이 뜯어볼만한 말이다. 빠진 강물을 가장 먼저 오염시킬 수 있는 사람이 정치인들이기 때문이라니 실소가 거듭 나온다.
이번에 조사된 9개 직업별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수에서는 시민단체 간부가 56.28점으로 가장 높았다. 노조간부, 대학교수, 언론인,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 검찰 법관 등 고위법조인 순으로 낮게 나타났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자료이니 그냥 우습게 넘길 일은 아니다. 국민들은 잘 지키고 있는 병역의무조차 국회의원과 대기업CEO는 잘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 사회는 분명히 정상은 아니다. 납세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도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민들의 입맛이 소태 씹은 맛이 될게 뻔하다. 정부가 공직자 부패나 대기업의 불법·탈법에 너무 관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소리가 나올만하다.
기본자질도 갖추지 못했으면서도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