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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저자거리 풍경

이창식 주필

지금은 찾아보기도 쉽지 않고, 눈에 띄지도 않지만 광복 직후의 혼란기 때까지만 해도 저자거리에는 여리꾼, 사기꾼, 소매치기, 거지, 건달 등이 우글거렸다. 이는 조선 시대 이후 대물림처럼 내려온 악습 가운데 하나였다.

큰 저자거리가 많았던 서울의 경우 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 ‘서울의 서문에 큰 시장이 있다. 이곳은 가짜 물건을 파는 자들의 소굴이다. 가짜로 말하면 백동(白銅)을 은(銀)이라 주장하고, 염소 뿔을 거북 껍질이라고 우기며, 개가죽을 담비 모피라고 꾸민다.

소매치기도 그 사이에 끼어 있다. 남의 전대나 자루를 예리한 칼로 째어 빼간다. 소매치기를 당한 줄 알고 쫓아가면 꼬불꼬불한 골목으로 달아난다. 거의 따라가 잡을라치면 대광주리를 짊어진 놈이 불쑥 나타나 “광주리 사려”하며 길을 막아 버린다. 더 쫓지 못하고 만다. 이 때문에 시장에 들어서는 사람은 돈을 전장에서 진(陣) 지키듯 하고, 물건을 시집가는 여자 조심하듯 하지만 곧잘 속임수에 걸려드는 것이다.’

소매치기는 예나 지금이나 패거리 조직 아래 운영되기 때문에 잡기가 쉽지 않다. 영조 때의 일이다. 풍채 좋은 거사가 종복을 거느리고 시장에 나타났다. 그는 비단을 사겠다며 은 한 봉지를 맡기고 내일 오겠다며 갔다. 상인들은 그가 요구하는 물건을 가게에 둔 채 집으로 갔는데 이튿날 와보니 비단은 모두 없어지고, 궤짝에는 가짜 은덩어리만 들어 있었다.

시장에는 거지들이 우글거렸다. 광통교 아래에는 적을 때 수십 명, 많을 때 2~300명에 달했다. 시골의 전답을 팔아 무과에 응시했던 자가 여러 차례 떨어지니까 고향 갈 생각을 포기하고 거지가 된 것이다. 시장에서 술을 파는 여인이 베틀 위에 앉아 있는 여인보다 많다고 했다. 정조 때 나온 말이다. 옛 수원에 시장이 선 것도 이 시기였으니까 수원 장터도 서울 장터와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저자거리에는 하는 일없이 놀고먹는 건달들이 많았다고 한다. 세월은 모든 것을 바꾼다. 오늘날에는 전자 사기꾼이 기승을 부리고, 거지가 노숙자로 변했다. 오직 안 변한 것은 얼굴없는 소매치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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