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아동·청소년의 생활패턴에 관한 국제비교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15세~24세의 청소년들은 OECD 국가들 중 공부하는 시간은 가장 많고, 수면시간은 가장 적은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학업 성취도는 다른 국가들과 큰 차이가 없거나 도리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단다. 그리고 각 영역의 평균들을 살펴보니 학습시간은 7시간50분, 수면시간 7시간 30분에 TV나 비디오 시청시간은 1시간 7분, 운동시간 13분, 독서시간 11분, 단체참여 및 무보수자원봉사 1분 등이었다. 하긴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 중 학습시간뿐 아니라 노동시간도 가장 길다고 한다.
진짜 훌륭한 나라의 국민들이고 학생들인 듯하다.
이런 조사가 눈에 띄는 것은 청소년 또는 교육정책에 대해 대단한 전문가적 시각을 가져서가 아니다.
단지 이제 막 청소년으로 접어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연구원의 비교연구보다 훨씬 더 열악하고 참담한 현실을 감당해야하는 내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특별히 귀가 열리는 결과들일 뿐이다.
내가 가진 소신만으로 내 아이의 당당함만으로 숨막히는 교육현장을 변화시킬 수도 없고 아이가 느끼는 현실적 경쟁심과 개인적인 욕구들을 어떻게 조율하며 운동시간과 독서시간, 단체활동, 봉사시간들을 늘려가며 사람냄새 나는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지 참 갑갑하기 이를 데 없다. 가까운 주변의 대부분 고등학생들은 현실은 학교 수업 후 학원을 거쳐 집에 오는 시간은 거의 새벽 2시라고 한다. 씻고 나면 온전히 4시간의 수면시간을 누리기도 빠듯하단다.
그런데도 우리 내 부모들이 모르는 사이 이런 현실적인 상황에 모두 동승하여 부모라는 의무와 권한으로 어느 대학에 어떤 성적이어야 갈 수 있는지가 초점을 맞추고 모든 사고의 중심을 성적을 향해 일렬종대로 길게 깃발을 들고 서서 아이들의 삶에 관여하고 있다. 관여가 아니고 참견하고 조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린 학년 초 담임선생님과의 첫 면담에서 예외 없이 항상 아이 성적을 먼저 만난다. 그리고 담임으로부터 그 점수만큼 내 아이를 평가받는다. 이러니 어느 부모가 성적에 냉정해 질 수 있는가 말이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중학교부터 이루어지는 자원봉사도 진정한 활동을 위한 봉사가 아닌 내신점수를 채우기 위한 점수가 되어 방학동안 몰아서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되어 있다.
아이들의 빡빡한 일정 탓에 부모들이 나서서 봉사신청을 해줄 수밖에 없고 효율적인 시간 활용을 위해 데려오고 가는 수고를 자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정도면 약과다. 선행학습에 바쁘신 아이를 대신하여 자원봉사를 할테니 봉사시간을 주면 안되겠냐고 요청하시는 넘치는 사랑을 가진 부모님도 만난다.
자원봉사활동엔 청소년들이 아닌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또 다른 청소년인 부모들만 있는 것 같다.
현실로야 그 부모를 대놓고 비난 할 수는 없지만 참 가관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모인 우리들이 내 아이의 안정된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내 꿈을 위해 내 아이와 함께 살 사람들과 그들의 사는 이야기는 전혀 상관없이 험한 세상의 풍파를 굳건히 막느라 부모인 내가 더 지친 수험생이 되어 있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을 업으로 하다보니 어느 대상을 위한 어떤 정책이든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의 냄새가 있어야 살아있는 정책이란 생각이 든다.
여러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어 내지만 여전히 성적중심으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성적이 좋은 학생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기회를 먼저 주고 있는 현실을 거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아이들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계획하게 하는 시간을 주고 기다주는 부모를 위한 훈련! 어떤 정책적 지원보다 중요한 것 같다.
대단한 플랜이 아닌 청소년, 그들 스스로 사람들과 주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도록 지켜 봐주는 어른들의 변화!! 갑갑한 교육과 청소년정책 변화의 중요한 시발점일 듯하다.
우리 청소년들을 사람냄새 좀 풍기며 스스로 만드는 삶을 살게 좀 해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