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 우화는 이솝 우화와 격이 다르다.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스케일면에서, 그리고 발상면에서 소요유 우화가 앞선다는 뜻이다. 원래 과장법은 중국을 따를 수 없다고 할 만큼 엄청나다. ‘북쪽바다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크기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그 물고기가 변해서 붕(鵬)이란 새가 된다. 붕의 등도 넓이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날개를 펴면 웅장하기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고 날개짓을 할 때면 물살이 3000리나 된다. 9만리를 곧장 올라가서 남쪽 바다를 향해 날아가는데 여섯 달을 난 뒤에야 한 번 쉰다’는 식이다. 이 우화에서 장자는 본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물고기 알을 가르키는 ‘곤’의 크기를 몇 천리라 하고, 새로 변한 물고기가 9만리를 올라가 여섯 달을 난 뒤에 한 번을 쉰다하였으니, 기상천외가 아닐 수 없다. 장자는 우스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거침없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소·요·유는 모두 논다는 뜻이다. 그는 평생토록 성공을 열망하며 애쓰는 인간, 어떤 결과가 올지도 모르면서 부를 향해 돌진하는 인간, 잔꾀로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 물욕의 노예가 되어 명예나 감각적인 것을 탐닉하는 인간들에게 진정한 자유가 뭔지를 말해준 것이다.
장자는 부인이 죽었을 때 시체를 깔고 앉아 항아리를 두들기며 노래했다. 조문 온 친구 혜시가 까닭을 묻자 “나도 처음엔 슬펐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슬퍼할 일이 아니더구만.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간 것 뿐인데 슬퍼할 까닭이 없지 않는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장자는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생존에 제자들에게 “내가 죽거든 들판에 버려라.”고 하였다. 깜짝 놀란 제자들이 “아닙니다”라고 하자 “땅에 묻으면 굼벵이나 벌레가 파먹지만 들에 버리면 날짐승과 길짐승이 뜯어 먹을 테지. 들에 버리면 하늘과 땅이 내 관이고, 해와 달과 별이 내 관 속에 들어 있는 보석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속 좁은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