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농촌 체험 프로그램이 인기다. 작물을 가꾸고, 수확해 즉석에서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냇가에서 물놀이 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결국 농촌 체험이란 흙과 물과 산과의 만남이다. 산업화되면서 도시에서는 흙을 보기 어렵게 됐다. 하늘을 찌를듯한 건물은 시멘트 덩어리고, 사통팔달 거침없는 도로는 아스팔트로 뒤덮혀 흙은 눈 씻고 봐도 볼 수 없다. 구전되는 우주 신화에 따르면 아득한 옛날 이 세상이 처음 생길 때 세상은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하느님이 해와 달을 만들고 있을 때 하늘나라 공주가 실수로 가락지를 이 세상에 떨어뜨렸다. 공주는 시녀를 세상에 보내 진흙 속에서 가락지를 찾게 했지만 헛수고였다. 이를 안 하느님이 장수 한 사람을 보냈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느님이 마침내 해와 달을 만들자 세상의 진흙이 굳어져 오늘날과 같은 땅이 되고, 풀과 나무도 돋아났다. 땅에 내려온 장수와 시녀는 부부가 되어 아들·딸을 낳아 자손을 퍼뜨렸다. 그런데 장수와 시녀가 가락지를 찾기 위해 진흙을 깊숙이 파낸 곳은 바다가 되고, 걷어 올린 진흙은 산이 되었다. 그리고 손으로 어루만진 곳은 들이 되고, 손가락으로 긁은 곳은 강이 되었다고 한다.
흙은 고향 또는 조국을 상징한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나라 밖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조국의 흙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일화는 익히 알려진 일이다. 옛날 먹거리가 없던 궁핍한 시절에는 흙을 양식 대용으로 한 경우도 있었다. 조선 태종 때 함경도 영흥 지방에 심한 기근이 들자, 사람들이 노르스름하고 조금차진 흙을 파다가 먹었고, 이 흙으로 떡을 찌거나 엿을 고아 먹었다고 한다. 흙은 생명을 낳고 거둬들인다.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흙을 귀숙처(歸宿處)로 여기는 것은 우리나라도 같다. 도시에서 자란 2세들이 농촌 체험을 통해 흙의 고마움을 알게 했다면 이는 산교육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