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직불금 부당수령자들에 대한 사후처리는 ‘혹시나’에서 ‘역시나’로 끝났다. 실제 농사를 짓는 영농 인들에게 주어지는 쌀 직불금은 토지주들이 엉터리 서류를 만들어 부당하게 타먹었다 해서 한때는 정치권을 비롯한 지도층 인사들에 대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번에는 바로잡을 것인가에 전 국민의 관심이 모아졌으나 그때뿐 한바탕 소란으로 끝을 내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 정부는 쌀 소득 직불금 부당수령 방지를 위해 여러 가지 신청자격 조건을 강화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쌀 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을 지난 6월 발표했다. 강화된 신청조건을 전제로 한 제도였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나와 또 한 번 제도의 실천성에 관한 의구심이 증폭하고 있다. 신청건수가 의외로 적었던 것이다. 농림부는 농지 임대자나 관외 경작자를 가려내기 위해 영농·임대차 확인서를 써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땅주인에게 임대차확인서를 써달라고 요구했다가는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 확인서 써달라는 요구에 땅주인들은 소작농들에게 이제 그만 농사를 포기하라고 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고령의 소작 농민들은 아예 직불금의 ‘직’자만 들어도 도리머리를 흔들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전년대비 30% 이상이 줄어든 데는 다 그만한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당장 물고를 낼 것 같이 떠들어대다가 어느 날부터 조용히 꼬리를 내린 것만 봐도 그렇다. 영농확인서를 허위작성하면 형사 처벌을 받는다. 또 임차농이 직불금을 수령해 토지주가 농지원부에서 삭제되면 양도소득세감면 등의 세제 혜택은 받을 수가 없다. 이러한 독소조항이 있는 한 앞으로도 신청자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땅주인들은 몇 십 만원 단위의 직불금을 탐내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상속세, 양도소득세 등의 문제가 더 큰 것이다. 토지주들은 당초 임대계약 체결 시부터 직불금을 신청하지 않는 조건을 내세우기 일쑤다. 그렇지 않으면 임차농들로부터 토지를 회수하고 농촌공사 등에 위탁을 해버리는 것이다. 남의 땅 빌려서 밥 벌어 먹고 사는 영세 임차농들이 목소리 높여가며 확인서 써달라는 요구는 저 먼 나라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기왕 새로운 제도를 만들려면 전후좌우를 잘 살펴서 시행해주기 바란다.
뻔히 계약해지 될 것을 알면서 임대차 확인서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에 지나지 않는다. 직불금 부당수령을 막기 위한 제도라면 그에 합당한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