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고, 풍수란 말은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한 자씩 따온 말이다. 옛날에 추위를 이기는 방법으로 바람(風)을 막는 게 최고요, 물(水)의 필요성은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다.
세상 살아가는 이치가 그렇듯이 풍수지리, 이 말은 앞서간 선조들의 현명함이 배어 있다. 풍수하면 청룡(靑龍), 백호(白虎)는 의례 뒤따르고 안산(案山), 조산(祖山)까지는 이해가 가지만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최고의 명당) 어쩌고 저쩌고 하면 아무래도 전설따라 삼천리가 돼 버린다.
우리 정도의 나이엔 사회적으로 잘 된 친구들이 반, 그렇지 못한 친구들이 반씩 섞여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이가 갖는 속성은 해 그름 때 낙조(落潮)를 바라보면 왠지 힘들게 살고 있는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풍수하면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치과의사 K원장. 서울대학 재학시절에 연극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아버지는 우리 사는 시(市)에서 떵떵거리는 부자였다.
개업할 때 당시로서는 인테리어란 개념조차 없을 때지만 병원 실내장식이 무척 고급스러웠다. 문갑 위에는 도자기 몇 개, 독일제 최고급 오디오, 그리고 그럴듯한 산수화(山水畵) 작품도 몇 점 걸려 있었다.
당연히 부모님들이 비용을 모두 부담했다. 사람 왕래가 가장 빈번했던 서울고속터미널앞 신반포 아파트 상가 2층에 간판을 걸었는데 퇴근길에 들르면 환자들이 그때까지 북적거렸다. 한참을 기다리다, 소주 한 잔을 얻어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주변 조건이 괜찮아 절약이니 검소 등 이런 말과는 상관이 없고 또 인심도 좋다 보니 친구들이 많이 꼬였다.
그때만 해도 신용카드가 생활화되지 않은 터라 퇴근길은 현금으로 가득찬 호주머니가 불룩했다. “오늘 이 만큼만 쓰고 헤어지자”며 그 중 일부를 꺼냈지만 결국은 김밥, 우동, 소주로 시작한 것이 양주로 변하고... 이튿날 그 전날에 거쳐갔던 곳을 슬쩍 자랑삼아 이야기하면 그런 친구를 못 둔 직장동료들은 매우 부러워했다.
그러나 신혼 초인지라 K원장은 아내에게 웬수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일 년쯤 지났나? 갈수록 병원풍경이 이상해지는 게 아닌가... 책상 위에 의학정보관련 서적으로 가득찬 책꽂이가 없어지고 ‘최신증권 투자기법’, ‘부동산으로 부자되기’ 등 이런 종류의 책과 함께 24인치 정도되는 증권터미널 모니터가 턱 하고 자리잡았다.
퇴근길에 들르면 말끔하게 차려입은 신사들과 낮은 목소리로 소근대고, 원장실 벽에는 대한민국 전도와 일부 지역의 확대된 지적도가 걸려있었다.
아뿔싸! 그러고 보니, 이 친구 병원주위엔 모두가 증권회사 지점과 부동산업자들 사무실로 포위돼 있는 것 아닌가...
원체 솔직한 그 친구, 그 동안 얼마나 벌었는지 자랑 비슷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썩은 이 뽑아서 몇 푼 된다고... 언제 큰 돈 벌겠어?” 그 뒤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출장 갔다는 말만 되풀이 됐었는데, 학회(學會)가 그리 자주 열리는 것도 아니고...
부동산 소개하는 사람들과 현장답사를 간 것이다. 원장실은 갈수록 지적도가 여기저기 더덕더덕 늘어나고... 도박, 부동산, 증권... 공통점은 중독성이 있는 것이다. 중독이란 한 가지에 몰두하도록 유도하고 사람을 황폐시킨다. 그때부터 뜸해졌다.
친구들 중엔 내가 가장 많이 만난 편에 속하는데, 속사정도 모르면서 나 때문에 병원일에 소홀했다는 소리를 듣는 게 두렵다는 약삭빠른 계산도 깔려 있었다.
하여간 그 친구, 사방에서 밀려오는 부채 때문에 월급쟁이 치과의사로 전락했다. 지금은 건강을 많이 잃어 그나마 접었다. 결국 병원 위치가 좋지 않은 셈이었다. 바람을 얻고 물을 막고, 득풍장수(得風藏水)를 한 꼴이었다.
유치원도 명당이 있다고, 아이의 입학을 위해 젊은 부모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지금도 풍수지리의 교범으로 치는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에 보면, 명당이란 첫째 지리(地理), 둘째 생리(生利), 다음은 인심(人心)이 좋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모두 긍정하는 상식의 나열이지만, 상식이 뭐니 뭐니해도 최고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