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별이 졌다. 전국 각지에서 애도의 물결이 끊이지 않고 있다. ‘3김 정치’를 직접 경험했던 노·장년층에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는 물론 영·호남 등 지역을 막론하고 큰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후광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8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50여년의 정치역정을 국민 화합과 남북 화해를 위해 바쳐온 한국 현대사의 거목이 안타깝게 스러진 것이다. 정치권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지도자’, ‘이 시대의 위대한 스승’, ‘시대의 큰 별’의 서거에 일제히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에는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 그대로 담겨있다. 천신만고 끝에 당선된 국회의원직을 3일만에 일어난 5.16 군사쿠데타로 잃고, 야당 정치인으로서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숱하게 옥고를 치르는가 하면 도쿄 피랍, 군사재판에 의한 사형선고 등 죽을 고비도 다섯 차례나 넘겼다. 또 선거를 통한 헌정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는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극복, 햇볕정책, 남북정상회담, 노벨 평화상 수상같이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큰 업적을 남겼다.
그가 야당 지도자로서 민주화 운동에 남긴 족적과 대통령으로서 통일정책의 기조를 바꿔 남북 화해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정치적 리더십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를 잘 아는 주변 인물들은 그가 오히려 대통령에 당선된 뒤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퇴임 후 대북송금 특검이 시작되면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에 흠집이 가기는 했지만 그는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민족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했던 퇴임인사처럼 전직 대통령으로서 북한 핵사태를 포함해 남북문제에 대해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적 견해를 밝혔고 연설의 대가답게 각계의 연설요청에 응해 통일정책에 대한 소신을 펴왔다.
그의 서거로 이제 민주화 과정의 두 축을 형성하며 한국 정치의 격변기를 헤쳐온 ‘양金(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한 축이 사라지면서 그들이 펼쳐왔던 ‘보스정치’의 흔적들도 역사로 남게 됐다.
국민은 요즘 같은 세상에 정치권 일각에서 독재정권이라는 말이 나오고, 거대 여당의 단독 국회나 법안 날치기처리 같은 구 시대의 정치행태가 거론되는데 대해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장례기간에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자숙하고 한국 정치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한 묘책을 찾아주기 바란다. 국민의 절망이 정치권 때문이라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