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일본은 1945년 9월 2일부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는 1952년 4월 28일 전날까지 약 7년간 연합국(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점령하에 놓이게 된다.
이때, 미 점령은 일본이 처음으로 경험한 피지배 경험이었으며, 점령이 종료된 이후에도 일본은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안보투쟁, 미군기지 반대운동, 베트남 전쟁, 고도 경제성장 등, 일본 전후사의 주요 국면에 있어서 미국은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것이다.
이때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점은 피점령에 대한 기술과 서사에 있어서 상호 모순적인 현상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만화 ‘블론디’는 민주적인 가정의 모델로서, 당시 이를 향수하던 일본인들에게 미국이나 미국사회는 자유와 민주의 표본이며 이상이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미 점령군의 폭력에 의한 일본인 여성의 성적 영유가 억압적인 일미관계 그 자체를 은유하기도 했다. 이처럼 저마다 회상하고 기억하는 점령상은 각각 다른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대립하기까지 하는 점을 볼때, 하나의 통일된 점령상을 정의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만들어진 점령 서사’는 ‘사실’에 가까운, 또는 ‘진실’된 점령상을 찾기보다는 하나의 점령상이 탄생되는 프로세스에 주목하는 가운데, 전후 일본문학이 패전 후의 연합국(실질적으로는 미국의 단독 점령)의 일본 점령을 어떻게 기억했는가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 책이다.
타국에 의한 피지배 경험과 그로인한 인식의 틀은 오늘날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중요한 문제다.
또한 해방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역시 미국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 책은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