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제15대 전 대통령 국장이 어제 엄수됐다. 우리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박정희, 윤보선, 최규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지만 국장은 박정희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이다.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웠지만 독재자로 낙인 찍혀 가족장, 윤보선, 최규하, 노무현은 모두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우리나라의 국장은 조선 시대 때 의식으로 일명 국상(國喪)이라고 했다. 태상왕, 태상왕비, 왕, 왕비, 왕세자, 왕세자빈, 왕세손, 왕세손빈의 장례를 말하는데 그 사무는 계제사(稽制司)에서 맡아보았으며 특별한 경우 국장도감(國葬都監)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하여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은 건국 이후 두 번째지만 고인이 남긴 크고, 넓고, 높은 업적을 감안하면 적격한 선택이었다. 이번 국장에는 고인 생존 때 친분이 있었던 외국 조문객 여럿이 참석했다. 그러나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북한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실세 6명의 조문단이었다. 그들은 고려항공편으로 올 때 김정일의 조화를 가지고 와 고인 영전에 바치고 명복을 빌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 햇볕 정책을 폈고, 분단 이후 최초로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공동선언을 이끌어 내는 등 평화통일 노력에 대한 고마움의 탓이 크다. 고인의 일기 일부가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제목으로 공개됐다. 글귀마다에서 고난의 자취가 묻어나고 민주화를 위해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던 투지와 인내의 편린도 가감없이 적혀 있다. 편안한 일상의 일도 적기 어려운 것이 일기인데 그는 고통이 클수록 그리고 눈앞에 절망이 닥칠 때일수록 일기를 통해 ‘자신’을 지켰다. 마지막 생일이었던 1월 6일 일기는 그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 같아 인상적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열었다.(중략)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이제 그는 역사 속의 인물이 됐다. 그러나 그는 이 나라에 민주주의라는 큰 선물을 주고 떠났다.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