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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마史-마주제변천사] 시행착오 겪으며 개인마주제 회귀

1920년대 日人 주도 회원마주제 시작
변형개인·법인마주제 거쳐 현재 정착

영국에서 근대경마가 싹 튼 이래 경주마의 주인은 개인이었듯이 192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 경마가 시작될 때도 경주마는 개인소유마로 경마구락부 회원만이 경주마를 출주시킬 수 있었던 회원마주제였다.

일본인이 경마를 주도했던 이 시대는 폐쇄적인 구락부로 호별세(재산세)를 많이 내는 자산가 중에서 이사 전원의 승인으로 가입이 허가되었고 조선인은 가입 자체가 쉽지 않았다.

1942년 경마구락부가 해산되고 조선마사회가 발족되면서 회원마주제는 폐지되고 마주등록제가 실시됐다.

이는 부실마주, 악덕마주를 일소하기 위해 마주의 자격요건을 보다 엄격히 하고 폐쇄적인 회원제도를 개선하기 위함이었다.

해방 후 6.25 한국전쟁 전까지는 순수한 개인마주제에 의해 경마가 운영됐다.

하지만 전후 뚝섬경마장이 개장하면서 개인마주제가 변질됐다. 전쟁이 끝난 후 경주마를 구하기가 어렵게 되자, 부족한 경주마를 구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조교사·기수들이 자기자금으로 마필을 구입, 타인의 명의로 등록했던 것이다.

1957년부터 1958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일본산마를 수입한 한국마사회는 이 말들을 직접 소유하여 경주에 출전시켰다.

회마제(會馬制)와 개인마주제가 공존했던 시기였다.

1965년에는 경마사업 부진으로 개인마주제가 사라지고 1966년 마사회가 민자 유치한 덕마흥업(주)이 법인마주가 된다.

마사회와 덕마흥업의 2대 법인마주의 체제가 된 것이다.

하지만 2개의 법인마주 체제는 책임소재가 모호해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고, 마사회는 1971년 덕마로 마필관리 업무를 이관하고 덕마흥업 단일마주체제로 전환했다.

1년 후인 1972년 마사회가 덕마를 인수하면서 마사회가 단일마주가 되고, 이 체제는 1993년 7월까지 이어졌다.

마사회 입장에서 단일마주제는 무척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제도였다. 경주의 편성도 자유롭고 상금에 대한 부담도 없어 가장 최소한의 비용으로 질 높은 경주를 팬들에게 서비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행체가 마주를 겸하는 형태는 경마시행의 공정성에 의문을 가질만한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단일마주제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아지자 마사회는 결국 개인마주제로의 전환을 검토하게 됐고, 오랜 시행착오 끝에 결국 1993년 개인마주제로 다시 전환하게 된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개인마주제는 경마 시행체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는 일조하였으나 경마가 고비용 구조로 바뀌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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