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포도향처럼 상큼하다. 자신의 포도밭에서 매년 예술제를 열고 있는 ‘포도밭 시인’ 류기봉 씨의 소식을 들으면 잘 익은 포도의 과육이 입안에서 터지는 듯 살맛이 난다. 지난달 29일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류 시인의 포도밭에서 열린 포도밭 예술제(본지 3일자 21면 보도)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그 포도밭에 달려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와 포도밭에 돗자리를 펴고 마주 앉아 포도냄새와 솔향기를 맡으며 차 한잔을 나누고 싶다.
포도밭 예술제는 올해 12번째 행사를 마쳤다. 이번 예술제엔 시인을 비롯한 예술인과 관객 등 200여명이 몰려들어 시와 음악에 매료됐다고 한다. 예술제에 참가한 시인과 독자들은 포도밭에서 송산하예 씨의 바이올린 연주, 가수 김희진 씨의 통기타 연주와 노래, 시인들의 시 낭송을 들으며 4시간 가량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시인들이 자신의 육필시를 각각 지정한 자신의 포도나무에 걸어놓고 그 아래서 시를 낭송한 후 독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담은 사진은 보기에 좋았다. 아마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의 미술대회도 함께 열렸던 모양인데 남녀노소가 청명한 초가을의 포도밭에서 어우러지는 장면이 상상되어 흐뭇하다.
포도밭 예술제는 원래 고 김춘수 시인이 프랑스의 한 시골마을 포도밭을 방문했다가 그곳 사람들이 포도나무에 그림도 그려 놓고, 작은 문화축제를 하는 것을 보고 온 뒤 류 시인에게 권유해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는 시와 그림을 전시하는 단순한 시화전 형태로 시작한 예술제가 어느덧 12회를 맞으며 지역의 독특한 문화축제로 자리 잡았다. “포도밭은 제 원고지이며 포도는 저의 시”라는 류 시인. 유기농법을 고집하며 포도농사와 이런 문화축제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해 온 류기봉 시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진정한 예술제란 이것이 아닐까. 관청의 보조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관변 문화예술단체들은 류기봉 시인의 포도밭 예술제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아울러 각 자치단체마다 천편일률적인 내용으로 벌어지는 도내의 각 예술제나 문화제도 자기 지역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류기봉 씨의 포도밭 예술제처럼 스스로 찾아가고 싶도록 차별화되어야지, 언제 어디서나 항상 볼 수 있는 축제라면 누가 시간을 내고 발품을 팔아 일부러 보러가겠는가? 엄청난 예산으로 유명 가수나 초청해 한두시간 화려한 공연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성공한 축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