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철이 됐다. 크게는 종묘제, 시제(時祭), 동제(洞祭), 작게는 기제(忌祭), 차례(茶禮)까지 다양하다. 제사는 원시공동체사회나 제정(祭政)일치 시대부터 있어 왔다. 고대인들은 천둥, 번개, 또는 구름, 바람을 보고 외경심을 가졌고 산과 들, 바위와 물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 주는 신령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산이나 나무, 바위에 제사를 지냈다. 이것이 제천(祭天), 산신제, 당산제(堂山祭)였다. 이후 제사는 자연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뀌어 시조가 있으면 시조를 모시고, 역대 임금을 종묘에 모신 뒤 종묘제를 지냈다. 고려조까지는 위의 유습이 그대로 전승돼 그 전보다 더 많은 제사를 지냈다.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유교의식이 강조된 가운데 다음의 세가지로 치러졌다. 첫째는 국가에서 거행하는 제사로, 국조(國祖) 또는 역대 임금에게 올리는 제사가 기본이었다. 둘째는 일반인들의 산신제, 해신제, 동제, 당산제가 있었는데 이것은 마을 공동체 또는 동계(洞契) 등에서 주관하였다. 셋째는 여염집에서 지내는 제사로 관혼상례(冠婚喪禮) 등 사례(四禮)를 중심으로 한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널리 보급되면서 조상 제사를 효의 실천으로 보았다. 그 중에서도 조상이 작고한 날에 지내는 기제를 중시하였다. 사대부들은 4대조까지 지내게 하였으나 서민들은 조부모까지만 지내게 했는데 조선 후기에 와서 서민들도 양반 흉내를 내느라 법을 어겨가며 4대까지 지내는 풍습이 생겼다. 구한말 이후 제사에 대한 간소화 문제가 제기되면서 절차와 범위 축소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았는데 1960년대에 ‘가정의례준칙’이 제정되면서 간소화되었다. 그러나 조상 대대로 전승된 제사 풍습을 법으로 통제하기란 쉽지 않았다.
다만 비용이 많이 드는 묘제와 시제가 다소 줄어들었을 뿐 기제와 차례는 여전했다. 기독교에서는 제사 대신 기도로 대신하지만 천주교에서는 전래의 제사나 차례를 부정하지 않고 있다. 아무튼 제사는 조상을 받드는 우리 겨레의 대표적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