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 이어 3일에는 정운찬 총리 내정자를 비롯해 6부 장관이 경질됐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집권 2기를 위한 인적 기반 구축이지만 청문회를 통과한 총리나 장관과는 달리 낙마(落馬)한 총리나 장관들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흔히 이런 경우를 “서리 맞았다”라고 말한다. 벼슬 길에 올라 의기양양하던 인사이거나, 사업에 성공해 떵떵거리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흔히 이 말을 쓴다. 시쳇말로 ‘수박 서리’라든지 ‘서리 맞은 구렁이’라고 하는데 이는 서리가 우리 생활이나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다른 재해 못지 않게 크기 때문에 생긴 비유라 할 수 있다. 국어사전에 ‘서리’는 공중의 물기가 땅과 물체의 거죽에 닿아 엉긴 흰 결정체이고, ‘성에’는 추운 겨울에 유리나 굴뚝에 수증기가 허옇게 엉겨붙은 것을 말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서리와 성에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70년대에 선보인 냉장고에는 불청객 성에가 말썽이었다. 가전회사는 연구 끝에 ‘서리없는 냉장고’ 광고를 냈는데 한글 학계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냉동실에 끼는 것은 서리가 아니라 성에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서리는 춘천에 내리는 서리로 알려져 있다. 춘천은 주변에 호수와 강이 많아 ‘호반의 도시’라고 하는데 날씨가 추워지면 호수의 수중기가 증발해 나뭇가지나 물체에 달라 붙어 서리를 이루게 된다. 호수 주변의 나무들은 마치 봄의 벚꽃처럼 예뻐보이지만 농부들에게는 두렵고 귀찮은 존재다. 서리 맞은 농작물은 죽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서리를 ‘검은 서리’라고 한다.
갑작스런 추위가 닥치면 나뭇잎이 떨어지고 다시 새싹이 돋아나는 동안 발육이 잠시 중단되는 탓에 나무에는 또 하나의 나이테가 생기는데 이것을 ‘서리테’ 또는 ‘틀린 나이테’라고도 부른다. 시골에선 동삼에 보리밟기를 하는데 이는 보리가 심어진 주위의 흙을 밟아 토양의 빈 공간을 최대한 없애 줌으로써 서리발에 의한 보리농사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이다. 서리 맞을 각오없이 벼슬길에 나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벼슬과 서리는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