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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진도와 삼별초

이창식 주필

고려 원종(1259-1274)이 그 11년(1270) 몽골에 굴복하고 왕실을 강화에서 개경으로 옮기자 승화후(承化候) 온을 새 임금으로 추대하고 침공한 몽골과 맞서 최후까지 싸운 것이 최우의 사병집단이던 삼별초(三別抄)였다.

1271년 5월 여몽연합군의 공격으로 근거지였던 진도가 함락되자 제주도로 패주하였으나 전열을 가다듬어 지금의 경기도 부천까지 반격하며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1273년 4월 전선(戰船) 160척을 앞세운 여몽연합군의 제주도 맹공을 이겨내지 못하고 김통정은 자결하고, 남은 1300명은 포로가 됐으며, 진도에 남았던 부녀자들은 치마를 뒤집어 쓰고 물에 빠져 죽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삼별초의 전말이다.

삼별초가 대몽항쟁 때 근거지로 삼았던 진도에는 용장산성(사적 제126호)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은 둘레가 약 13km에 달하는데 당시의 인력과 기술로는 축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진도에는 삼별초가 새 임금으로 추대했던 왕온의 무덤과 함께 왕온이 탔던 말의 무덤(전라남도 기념물 제126호)이 있다. 그런데 왕과 함께 몽골군에 붙잡혀 목숨을 잃은 왕의 아들 항(恒)의 무덤은 남아 있지 않다. 또 진도에는 남도석성(南道石城·사적 제127호)이 있다. 이 석성은 조선 시대 때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수군과 종4품의 만호(萬戶)를 배치하여 조도해협과 신안 하의도 해역 등을 관할케 하였다고 한다. 성의 둘레는 610m, 높이 5.1m로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성의 외곽을 건너다니기 위해 마련했다는 쌍운교와 다운교는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축조 양식이어서 이채롭다. 진도군은 남도석성 복원을 위해 오래 전부터 복원사업을 시작해 현재 관아와 내아, 객사를 복원했고, 앞으로 선소(船所)와 활터 등도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산 뒷받침이 여의치 않아서인지, 석성 안에 불법으로 지운 가옥들이 여러 채 남아 있어서 보기 민망했다.

편마암으로 쌓았다는 석벽도 그리 정교한 것 같지 않아 아쉬웠다. 삼별초의 고장 진도. 진도는 해역이 깨끗하고, 섬 전체가 아름답고 조용해 이름 그대로 보배로운 섬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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