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생활에 시달리다 보면 산사(山寺)가 그리울 때가 있다. 딱히 부처님을 믿지 않더라도 절간은 조용하고 어머님 품같이 아늑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절은 불사(佛寺), 불찰(佛刹), 사원(寺院), 사찰(寺刹), 범찰(梵刹), 사문(寺門), 감원(紺園), 감전(紺殿), 법동(法棟) 승사(僧舍), 불가(佛家), 선궁(禪宮), 승원(僧院), 산문(山門) 등으로 불리우는데 속칭은 절간이다. 절 이름에는 영낙없이 절 ‘사(寺)’가 붙는다.
불국사, 낙산사, 용주사, 해인사, 송광사, 마곡사, 전등사 등이다. 그런데 원래 사(寺)는 절간의 이름이 아니라 관청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지금부터 1300여년 전 중국 당나라 도성에는 태상사(太常寺), 광록사(光祿寺), 대리사(大理寺) 따위가 있었는데 이 건물들은 모두 절간이 아니라 관청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한 것은 기원 전후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는 관청 이름으로 사(寺)를 썼다고 한다. ‘사’자의 원의(原義)는 ‘손을 움직여 일을 한다’는 뜻으로, 당나라 때 아홉 개의 관청이 있어서 ‘구사(九寺)’라고 불렀다. 앞에서 열거한 태상사 등도 구사의 일부였다. 전설에 따르면 후한(後漢)의 명제(明帝) 영평 10년(67)에 두 사람의 승려가 낙양에 들어왔는데 이들이 중국에 불교를 퍼뜨린 최초 전도사였다. 명제는 이들을 외국인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홍로사에 수용했고, 나중에 도성 밖에 백마사(白馬寺)를 세워 수도를 하게 했다고 전한다. 또 전한 시대의 역사서인 ‘한서(漢書)’에 ‘사문(寺門)이란 관청의 대문이다.
진·한나라 때는 관청을 대문이라 일컬었다. 따라서 절간의 문은 아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사’가 관청 명칭임이 분명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절에 가면 중 노릇하고 싶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일정한 주견없이 남의 일을 보면 덮어놓고 따르려고 한다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 “배에 가면 사공 노릇하고 싶다”는 말도 있다. 욕망은 무죄다. 다만 나설 자리, 안 나설 자리 가리지 않고 덤벙대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때로 산사를 찾아 경계로 삼는 것도 좋을성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