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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도시의 품격(品格)

 

새롭게 설립되는 인천시문화재단에 한하운(韓何雲) 시인의 기념 코너가 만들어 진다는 단신(短信)을 보았다. 그리고 김포시에서도 시비(詩碑)를 건립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단다. 한하운 시인, 고향은 이북 문둥이 시인으로 알고 있는데... 웬 인천... 그리고 김포?

한하운 시인과 고등학교 시절에 짧은 인연이 있었다. 특활시간(特活時間)은 땡땡이 쳐도 슬쩍 넘어가는 여유 쯤으로 생각한다. 순전히 마음 좋은 선생님이 담당한다는 이유 하나로 에스페란토어(Esperanto-1887년 폴란드 자멘호프가 고안한 국제어)반을 신청했는데, 나와 같은 이유로 이름 있는 농땡이 꾼들은 하나같이 에스페란토반에 모였다.

첫 수업시간에 선생님 왈 “나는 에스페란토어가 눈에 주먹을 댄 것처럼 깜깜하다. 학교에서 구색을 맞추려다보니 어쩔 수 없구나. 하여간 잘지내자.” 한 명씩 장래에 꿈을 이야기 하라고 말씀하시거나 당시 유행가를 부르게 하든가... 참으로 유쾌하고 떠들썩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엄숙하게 “오늘 모두 저녁 몇 시까지 군인극장(軍人劇場-휴가 나온 장병들 혹은 군인가족 전문 복지시설)에 오너라. 문둥이 시인 한하운이란 분의 시낭송회가 있다. 만약 참석하지 않을 경우 결석으로 간주하겠다.” 평상시 모습과 다르게 아주 결연(決然)했다.

지금이야 한센병이라고 그럴듯하게 부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문둥병, 그리고 하늘에서 내린 병이라고 천형병(天刑病)이라고 불렀다. 이야기꾼인 친구로부터 문둥병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에 굉장히 두려웠다.

학교 다닐때 1등을 놓쳐 본 적이 없는 청년이 당시만 해도 군대를 기피하던 시절인데도 스스로 자원입대를 해서 말단 소총부대에서 선임과 후배들로부터 모두 성실하다고 칭찬을 받는 청년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 스무살 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무서운 병, 외로움에 시달리고 보니... 결국 예쁜 처녀와 사귀게 돼 손도 잡고 입맞춤 하는 사이로(이 부분에서는 굉장히 리얼하게 설명했음) 발전했는데 깜깜한 밤중에 걱정이 돼 집까지 배웅을 하려고 하면 한사코 거절했다.

어느 날 몰래 뒤따라 가 보았더니 이름은 그럴듯한 성좌원(星座院). 별이 내려 앉은 자리, 실로 기막힌 건 나환자 집단촌. 그 때부터 그 청년은 소독약으로 피가 나도록 손을 씻고 입이 헐도록 양치질을 했으나 얼굴에 조그마한 뽀드락지가 나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문둥병의 초기 증상으로 알고 몸과 마음이 시들시들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청년 부모님들의 마음과 처녀의 애틋함. 이것을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고 나병에 대한 무지함이 이 정도였다. 요즈음 선거에 나서는 사람들을 보라. 그처럼 똑똑한 사람들이 만약 전염위험이 있다면 어떻게 같이 밥 먹고 악수를 할 것인가?

문둥병은 무서웠지만 단호한 선생님의 지시도 무서웠다. 호기심도 있었다. 극장 앞자리는 모두 비어 있었다. 혹시 침이라도 튀어서 옮기면 어떡하나 이런 탓이리라. 시인이 검은 색안경을 쓰고 단상에 올랐다.

보리피리 불며/봄 언덕/고향 그리워/필닐니리/보리피리 불며/꽃 청산/어릴 때 그리워/필닐리리/보리피리 불며/인환의 거리/인간사 그리워/필닐리리/보리피리 불며/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필닐리리...

하늘과 인간이 모두 버린 천형의 병, 부모형제도 버려서 이곳저곳을 떠돌고 가는 곳 마다 돌팔매질뿐인 저주 받은 인생. 그러나 시를 쓰는 사람의 심성은 고운법이다. 시낭송에 이어 살아온 인생이야기를 하자 구석에서는 여학생들이 손수건을 꺼내 들고 훌쩍거리고...

한하운 시인은 키도 크고 체격도 건장했다. 보리피리를 낭송하는 목소리가 자기의 신세를 탓하듯 처연하지 않고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듯 밝고 낭랑했다.

모두들 조용했다. 훗날 보육원 2개를 만들어 어린이들을 보살피고 출판사를 경영하고 만평이나 되는 안평농장을 운영하고, 기술고등학교 교장...

김포에 한하운 시비 건립운동은 시인의 묘가 김포공원 묘지에 안장돼 있기 때문이란다. 정말 인천 사람. 김포 사람 대단히 가상(嘉尙)스러운 분들이다.

사람에게도 품격(品格)이 있고, 마찬가지 도시에도 격이 있다. 잘 추진되길 바라며 일부러 시간을 내 산소를 찾아 술잔을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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