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에 아주 해박(該博)한 친구가 있다.
판단이 잘 안될 경우 이 친구에게 물어 보면 딱 부러진다. 예측 성공률은 50% 정도지만, 서슴없이 속 시원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좀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면 ‘목민(牧民)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나’-쉽게 말하면 시장(市長)의 자질과 자세에 대해 노변좌담(爐邊座談) 비슷한 걸 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한 사람을 예로 들었다.
도시가 고풍스럽고 전통적이어서 양반스러움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게 나이보다 훨씬 조숙했으며, 거기다 주변을 챙기는데 뛰어 나게 부지런한 사람이 있었는데…좀 나이 들어서 경제 사정이 여유롭지 못했음에도 계산대 앞에서 뭉그적거리지 않고 남의 관혼상제는 반드시 얼굴을 내미는 부지런함에 결코 남의 흉은 피하는 양반의 전형이었다. 주위에서 그 사람을 평할 때 한 마디로 ‘양반스럽다’ 이렇게 덕담을 했다.
뚜렷한 직업은 없었으나 무슨 협회지회장 그리고 정당의 간부를 하더니, 시장(市長) 출마를 해 주위에서 모두 제 힘 닿는대로 도와줘 무난히 당선됐다고 한다.
그러나 당선 뒤 재야(在野)에 있을 때와 똑같이 밤늦더라도 상가를 순회하면서 소주를 나누다 보니 위장병을 얻어 부속실에는 한약 다리는 냄새가 진동을 했단다.
결혼식도 일일이 챙기고 휴일은 관광버스 앞에서 잘 다녀오시라고 90도로 머리를 조아리는 등 여론은 엄청나게 좋을 수 밖에 없었다. 시장에 당선된 후에도 전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겸손하고 양반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인심이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니다. 인사문제에 내사람 챙기기, 동문이나 일가를 지나치게 우대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재선은 무난했다.
두번째 임기동안 특징이 알듯 모를 듯 한 단체에서 주최하는 대상을 받고 심지어 질병관리본부에서 주최한 ‘급성질환실험실감시사업 우수상’도 받고 한국농협대학에서 주최하는 ‘한국농업대학 입시 홍보상’도 수상하고... 하여간 거리엔 ‘나 잘했소!’ 이런 식의 현수막이 넘쳤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인지 카자흐스탄인지 중국인지 이름없는 도시의 무슨 대학에서도 명예박사학위도 받고...
도대체 이해가 안 되더란다. 알아봤더니 깜냥이 안되는 사람을 승진시키거나 중요한 자리에 앉히고 보니,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조건적인 충성심이 발동되었을 것이다.
결국 무슨 단체에 시장과 시정의 공적을 과장되게 구성해서 제출하고 또 홍보비를 지급하고...
좁은 동네라 금방 소문이 나서 여론이 좋지 못하다 보니 다음에는 정당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평소 ‘양반스럽다’ 이런 칭송이 ‘분수를 모르는 사람’으로까지 변질을 했다고 한다.
선거에 떨어진 뒤 위로차 방문했는데 온통 사방의 벽이 트로피와 감사패로 채워져 있고, ‘풀죽은 목소리지만 왜 전국이 다 알아주는 나를 떨어트렸을까?’ 주민들의 수준을 원망하는 내용도 묻어져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명예회복을 위해 다음번에 다시 출마하겠노라고 결심하는데 게시판에는 빡빡하게 일정표(대부분 결혼식)가 짜여 있었다고 한다.
필자도 거리의 그런 종류의 현수막을 보면 ‘왠지 모두 세금으로 나가는 돈인데...’ 하면서 개운치 않았는데 국정감사에서 어느 국회의원이 이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했다고 한다. 뒤늦었지만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광역단체는 2007년 한 해 71개의 상을 받았다고 하니,평균 5일에 하나 꼴인 셈이다. 우리 속담에 “굶주린 양반 개떡 하나 더 먹으려 한다”는 말이 있는데... 무엇이 이런 사람을 그리 굶주리게 만들까? 허영심(虛榮心)일까? 아니면 열등감(劣等感)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