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를 여러개 만들어 회사를 운영하는데도 쓰고 가계에도 보탬이 되도록 할려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발급받은 신용카드를 소지한 수많은 회사나 가정은 부도라는 쓰라린 위기를 맞아야 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신용카드 대금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불과 수년전의 일이다.
잠잠하던 신용카드 불법 회원모집이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놀이공원, 공연장, 전시회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주 대상이다. 일부 모집인들은 현금 3만원 제공을 미끼로 회원 가입을 유혹한다고 한다. 공연장 티켓을 공짜로 주거나 연회비를 대신 내주는 사례도 있다. 고객의 직장이나 소득 등은 제대로 따지지 않는 모양이다. 이러니 신용카드 발급규모가 1억장을 넘어 카드대란 직전이었던 2002년 수준에 육박할 정도다. 마케팅 경쟁이 혼탁해지면서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카드대란 당시의 구태가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6월말 현재 신용카드 발급 수는 1억27만장으로 올해 들어서만 400만장 넘게 증가했다. 이런 속도라면 연말에는 사상 최대였던 2002년 말 당시(1억480만장)와 비슷해질 전망이다. 그럼에도 금융당국과 카드업계는 제2의 카드대란 우려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업계는 그 근거로 철저한 심사로 부적격자를 걸러내고 있음을 내세우고 있다. 신용카드 연체율도 낮아 건전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 5개 전업카드사의 연체율은 6월말 3.08%로 2003년 카드대란 이후 가장 낮았다. 신용카드사들이 회원 모집 과당경쟁에 나서게하는 자신감도 이처럼 낮은 연체율에 기인하는 측면도 있다고 한다. 환란이 터진 당시와 같이 카드사 들이 개인의 재정상태를 파악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신용카드를 발급해 준 전례를 밟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무분별한 길거리 모집이 계속되는 한 부실회원이 쌓일 공산이 크다. 경기 침체가 심화되면 소득에 비해 카드 빚이 과도한 부실회원들은 순식간에 카드사의 연체율을 높이고 유동성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카드대란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최근 들어 가계 빚이 급증함에 따라 채무불이행의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가계부채는 6월말 697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상환능력은 최악으로 추락했다. 고용은 불확실하고 소득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이자폭탄’이 현실화되면 신용불량자가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 무시무시한 신용대란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