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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2등에게 보내는 갈채

 

금요일 오전부터 슬슬 마음이 들뜬다. 내장산 단풍 혹은 아직 보지 못한 해운대 영화 한 편, 그리고 소원했던 아내와 외식. 그러나 월요일, 돌이켜 보면 수월한 계획이지만 마음 먹은대로 이룬 것이 없다. 휴일의 게으름. 아침 늦게 기상하고 동리 목욕탕이나 어슬렁거리고...

이래선 안 되지, 크게 마음먹고 ‘선비왕을 꾸짖다’란 책을 샀다. 이조(李朝)때 명상소문(名上疏文)을 묶은 것인데, 공원 벤치에서 한껏 가을 멋을 누려 보려고...

그러나 책 목차만 훑어 보았을 뿐, 장장 6시간을 케이블 채널 M-net의 슈퍼스타K 선발전을 시청했다. 사실 이 방송은 사이키델릭한 조명, 비트가 강한 밴드, 어지러울 정도의 카메라 워킹, 무슨 말인지 모를 랩으로 된 가사, 저래도 되나 할 정도의 파격적인 의상, 그리고 소위 코에도 피어싱을 하고...

‘참으로 요즘 아이들이란...’ 하면서 채널을 휙 돌려 버리는 음악전문 방송 M-net을... 도대체 무엇이?

하늘은 그저 그만이고, 부대끼는 바람마저 산뜻한 가을날 TV 앞에만 머무르게 했을까? 제작비 40억원, 오디션 기간 7개월, 참가자 71만명, 1등 상금이 1억원에 우승 즉시 앨범 발매. 참으로 규모가 엄청나서 가수의 꿈을 가진 청춘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은 2등을 한 조문근이란 스물다섯살의 청년에게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외모에 그리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지만, 열등감은 결코 없었다. 실제 나이보다 훨씬 들어 보이고, 요즘의 미남 기준에는 절대치가 모자랐다. 눈은 실눈이 되고, 들쑥날쑥한 치아는 교정하기도 쉬울 것 같지 않고, 또 어딘가 생활의 빈티가 몸에 배어 있다.

딴에는 멋 낸다고 모자까지 썼는데 60년대 거리의 약장수. 출전 동기가 무엇이냐는 심사위원의 질문에 “음악은 즐기기 위한 것이고, 즐거움을 나누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상금이 1억원인데 이런 피 말리는 잔인하고 독하고 떨리는 경쟁을 하면서 즐긴다는 말이 가식처럼 느껴졌지만, 예선에서부터 보여준 자연스런 자세는 분명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

한차례, 한차례 결승을 향해 진출할 때마다 심사위원들이 결과를 발표하는데 다른 이들은 눈꺼풀이 떨리거나 심호흡을 하고 있을 때, 나의 조문근은 꾸미지 않는 그 촌스러운 웃음을 계속 웃고 있었다.

엄마가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화면에 뿌옇게 처리되었고... 정상적인 음악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는데도, 그처럼 듣는 사람의 마음 깊이 감명을 주고 어떤 기성가수의 노래도 제 것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어쨌든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란, 멋스러움과 통한다.

TV 화면에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선수 얼굴에 태극기가 겹쳐지고, 그 선수가 제 나름의 의미를 담은 굵은 눈물을 흘릴 때 우리 모두가 따라서 코끝이 찡해진다. 경쟁하는 동료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조문근의 모습을 보고, 집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게 코끝이 찡해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렸다. 꼭 조문근이가 우승하기를 바랐다. 가난이 죄가 아니란다! 못생긴 것도 죄가 아니란다! 그 맑은 심성 하나만으로도, 보상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조문근을 우승으로 뽑았지만, 시청자들의 투표에서 안타깝게 2등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환한 얼굴로 1등으로 합격한 출전자의 아버지, 어머니가 단상으로 오르는데 정중하게 모시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또 슬쩍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래 내 아버지가 네 아버지고, 네 어머니가 내 어머니! 치열한 경쟁 상대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하는 차점자, 이것이야 말로 천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비춰졌다.

조문근만 그런 게 아니었다. 눈이 멀쩡한 친구와 시각장애인의 듀엣으로 노래를 시켜 한 사람을 탈락시키는 경선이 있었다. 시각장애인에게 오늘 왜 지팡이를 짚지 않았냐고 물으니 “함께 부른 친구가 합격되면 박수를 쳐야 하는데 지팡이 짚고 박수칠 순 없잖아요” 정말 감동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1970년대말 박완서 선생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란 책이 출간돼 세간의 폭발적인 호응을 받은 기억이 있다. 현실은 첫번째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1969년7월20일 미국 아폴로 11호 우주선 선장)은 알아도, 두번째로 성공한 사람은 누구든 기억하지 않는다. 정녕 꼴찌 자체가 아름다워서일까? 계속 꼴찌에 머물러서 좋다는 말일까?

하여간 그날 얻은 교훈은 겉으로 판단해서 ‘요즘 아이들’이란 소린 앞으로 가급적 삼갈 참이다. 1등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상금 1억원을 어디에 쓰겠냐는 질문에 “엄마에게 조그만 가게 차려 드릴거에요” 이래서 우리나라의 미래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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