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화성행궁 광장 옆에 있는 건물들은 화성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철거됐거나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아직 철거가 안 된 건물들 내에 작가들이 모여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일부는 비록 한시적이지만 아예 여기에 살고 있는 이들도 있다. 현재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38명의 작가들이 철거를 앞둔 건물에서 함께 작품을 창작하고 정신적 소통을 하고 있으며 함께 식사를 하고 잠을 잔다. 따라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작품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구경할 수 있으며 작가들과 차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이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는 프로그램의 이름은 ‘행궁동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란 특정 지역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머물면서 작업을 하거나 문화체험, 전시 등의 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일명 ‘거주 프로그램’이라고도 한다. 보통 주제가 정해져 있고, 예술분야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걸쳐 운영되고 있다. 행궁동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세계문화유산 화성 성곽 안에서 살고 있는 행궁동 주민들이 지역의 작가, 단체 활동가와 함께 추진하고 있는 ‘행궁동 역사문화마을 만들기’사업의 일환으로, 화성 행궁 앞 광장의 남·북 지역의 철거대상 건물에서 펼쳐지고 있다.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화성 성역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구도심 지역인 행궁동의 많은 건물이 철거되고,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떠났다. 이 자리엔 광장이 들어섰고 종각 등 옛 건축물이 중건됐으며 화성홍보관 등 새로운 건물이 세워졌다. 앞으로 새로 들어서는 건물은 관광객을 위한 민속식당이나 관광상품판매장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한다. 바로 이곳에서 진행되는 행궁동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철거와 신축이라는 현재의 변화 과정에 작가들의 상상력을 결합함으로써 철거 지역을 예술 작품으로 활용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천연염색, 막사발 도예, 미술, 시조 등 다양하고 품격 높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아르헨티나의 세계적인 아트타일 작가인 힐머 씨와 그의 동료작가 등 7명이 김용문 씨와 함께 약 한달간 머무르며 작업을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작업이 완료된 후 오픈스튜디오 행사를 진행하고, 철거 퍼포먼스를 통해 건물을 해체함으로써 전 과정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한다. 비록 주민들의 삶의 애환을 담은 건물은 철거되지만 주최 측의 말대로 레지던시 참여 작가들의 창작물은 주민의 마음속에, 그리고 세계문화 유산 화성과 더불어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행궁동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