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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영웅 안중근

이창식 주필

100년 전 오늘(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하얼빈역 플래트폼에서 울려퍼진 6발의 총성은 단순한 총소리가 아니라 대한제국의 독립을 가로막은 흉도에 대한 처단의 총성이었다. 6발 가운데 4발을 맞고 15분 만에 죽은 것은 을사보호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조선통감을 지낸 뒤 일본 추밀원 의장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였고, 총을 쏴 이토를 쓰러뜨린 정체불명의 사나이는 안중근 의사였다. 그는 이토히로부미가 쓰러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권총을 버리고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한국만세)”를 삼창하고 러시아 관헌의 오라를 순순히 받았다. 이 장면이야말로 대한의 독립을 갈망하는 대한 청년의 비장하면서도 용감한 장거였다. 안중근은 러일전쟁(1904-1905) 때까지만 해도 ‘일본맹주론’자였다. 일·조·중이 정립(鼎立)하여 ‘동양평화’를 이룩하자는 것이 전제였다. 그러나 일본이 이를 어기고 조선에 이어 중국 침략에 나서자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는 옥중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동안에 ‘동양평화론’을 완성했다. 첫째 평화회의를 조직하고, 둘째 삼국 공동의 은행을 설립해 공용 화폐를 발행하며, 셋째 삼국 공동의 군대를 조직하고 타국의 언어를 가르친다. 넷째 조선과 청국은 일본의 지도 아래 상공업 발전을 도모하며, 다섯째 조·청·일 3국의 황제가 로마교황을 방문해 협력을 맹세하고 용관을 받아 세계인의 신용을 얻는다 였다. 일본을 적대국으로 여기고 이토히로부미를 조선 침략의 원흉으로 단정하고 처단한 처지였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진정한 동양평화가 이상(理想)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지 100년이 됐다. 국내 여러 기관단체들의 기념·추모·학술 행사 등이 한창이다. 모두 의미 있고 가치있는 일이다. 그러나 절대로 잊지 말아야할 것은 안의사가 우리 겨레에게 보여준 독립정신과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감이다. 안의사는 우리들 기억 속에 ‘영웅’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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