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눈물이 많아졌다. 눈물이란 본시 훈훈한 사람과 어울리지, 매사 메마른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데……. 어쩐 일인지?
뒤늦게 김연아 스토리를 보다가, 극장에서 재소자들의 합창단, “하모니”란 영화를 보다가도, 인순이가 “거위의 꿈”을 열창하는 모습을 보다가도 줄줄 흐르는 눈물.내 나름대로 분석한 결과는,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공감(共感)과 인연(因緣)에 대한 재인식(再認識)!” 이제 철이 좀 드는가 보다.
며칠 전,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15년 전 쯤, 출입하던 만두집 안주인이었다. 내용인 즉, 갑자기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고 전제한 후, “절대 달리 생각하지 마십시오.(아마 축의금 때문 인 듯) 저의 둘째 아이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아시다시피 저희들이 외롭기 때문에 평소 고마운 분을 모시고 싶어서 결례를 무릅쓰고……. 중소도시의 번화가에서 만두집을 하는 화교(華僑)였다.
긴 인연은 속세(俗世)에 때 묻기 쉽다. 후딱 지나가는 짧은 인연이 오히려 소중할 수도 있다. 윗대는 한약종상이었고, 2대는 주 업종은 만두였지만, 손님들이 청하면 각종 중화요리도 선보였다.
어느 날, 그 가게가 없어졌다. 단골이 많아서, 문을 닫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수소문해 봤더니 좀 외곽지로 가게를 옮겼단다. 오지랖이 넓은지라, 찾아가서 이유를 물었더니, 선뜻 대답을 하지 않아 남편 되는 왕사장과 빼갈(고량주) 몇 잔을 마신 후…….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 되고 싶은데, 너무 귀화(歸化)하는데 법규(法規)가 까다로워……. 알아봤더니 그 당시 법으로 화교는 상가 100평(?) 이상을 소유할 수 없고, 또 귀화하려면 지방도시의 시장, 서기관급(書記官級) 2명 이상이 신원보증을 해야 된다고 한다.
건물주는 장사가 잘되는 것을 배 아파 하면서 매년 월세를 올리고 보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아닌 - 왕사장이 땀 흘리면 건물 주인이 돈 챙기는……. 결국은 변두리로 이사 갔다고 한다.
의분(義憤)을 느꼈다. 벽 한 면엔 장개석 총통의 사진이 붙어 있는 시절인데, 부패군벌(腐敗軍閥) 어떻고 하지만, 우리나라가 독립하는데, 상당한 지분이 있을 정도로 호혜를 베풀었던 역사적 사실이 있고 보면, 우린 결국 몰인정한 사람이 됐다.
그때만 해도 한창 피 순수한 나이라 서기관 몇 분을 찾아갔지만, “참으로 순진한 생각거두시라. 재정보증(財政保證)보다 더 무서운 것이 신원보증(身元保證)이다.” 오히려 이런 교육만 받고 발길을 돌렸다.
그 사람들이 만두집에 가서, “누구누구가 찾아와서 당신들 걱정을 하고 있더라” 이런 식으로 나의 뜻이 전달된 모양이었다. 결과에 관계없이 최고의 손님으로 대접 받았다.
그 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한중수교(韓中修交)를 공식으로 발표했을 때, 그 집은 초상집처럼 어두웠고 침울했다.
“영원한 우방(友邦)도 없고, 영원한 적(敵)도 없다.” 이런 외교적 위로를 했지만 설령 그 점을 인정하지만, 불과 이틀 전에 통보를 한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당찬 질문이 왔다. 그 들은 가당찮은 식견이 있는 외국인 아닌 외국인이었다.
어찌됐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자기들이 먹는 음식을 내 왔다.
오향장육 -. 우리가 흔히들 먹는 족발이었다. 참으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훌륭한 요리였다.
그들은 두 명의 남자 아이들을 슬하에 두었는데, 참으로 둘 다 키가 훤칠한 것이 누가 보아도 잘생겼다. 둘 다, 한의과대학(韓醫科大學)에 다녔는데, 방학 때는 대수롭지 않게 만두 배달을 했다.
“왕 사장님 - 저네들 보면, 당신은 성공한 분입니다.” 이 말에, 싱긋이 웃던 왕사장. 아마, 이 번 결혼식 초청이 이렇듯 잘 키운 자식을 당당히 공증(公證) 받고 싶은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하여 일어나고 우연이란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중국 속담에도 천리를 떨어져 있어도 인연이 있으면 만나고(有緣天里來相會),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마주보고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無緣對面不相逢)
인연의 무게와 세월의 무게가 서로 싸움을 했지만, 결국 그날 결혼식에 참석 못했다.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상당히 무거웠다. 축의금을 평소 기준보다 많이 넣는 호들갑을 떨었지만, 역시 진정한 축하는 직접 얼굴을 보면서 하는 것이 제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