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 26일 아침. 송요찬 계엄사령관은 경무대로 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건의를 한다. “발포를 안 하면 수습이 안 됩니다.” 그 말을 들은 이승만은 “발포는 안 돼. 국민이 무엇을 원하나?” “하야하시랍니다.” “그럼 하야하지.”
당시 송요찬의 수석부관이었던 김운용 전IOC수석위원장이 모 주간지에 기고한 내용 중 일부다.
이승만이 적어도 4.19라는 국민적 저항 앞에 끝까지 무리수를 두지 않고 순순히 물러난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3.15 부정선거로 장기집권을 꾀하려던 부패한 자유당 정권에 대한 학생들의 의거로 시작된 4.19혁명이 일어난 지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4.19혁명 50주년을 맞아 그날의 주역들이 이승만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던 데서 벗어나 공과(功過)를 공정하게 다뤄야 한다며 ‘이승만 다시보기’를 시도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청춘인 20대에 생각했던 이승만과 고희를 넘겨 바라보는 이승만이 같을 순 없다.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통성을 이어가고 장차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격동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온 가슴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그날의 주역들이 50년이라는 세월의 강을 건너 다시 바라보는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비록 용인(用人)에 실패한 결과라고는 하지만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으로 말미암아 4.19를 초래한 것은 그의 치명적인 허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고 한반도를 공산화에서 막아낸 공로는 초대 대통령으로서 충분히 평가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독재자라는 낙인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과 달리 대통령 이승만의 일상은 지극히 검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재자의 사치와 방탕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얘기다. 더욱이 그의 독재에 대해서는 희화적으로 강조된 면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이승만에게 지나치게 인색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해본다. 최근 들어 ‘국격(國格)’을 높이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노력의 결과 오는 11월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데 이어 지난주엔 2012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개최국으로 선정되는 등 우리의 국격은 국제무대에서 경제분야에 이어 안보분야로까지 확대돼가고 있다. 이러한 국운 상승의 연장선상에서라도 ‘인간 이승만’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