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 민관식(小崗 閔寬植)선생을 처음 뵌 것은 1993년 1월 서울 한남동 UN빌리지 자택에서였다. 신문의 신춘 기획물인 ‘명사 초대석’에 당시 경기도민회 회장이던 소강을 모시기로 하고 수차례에 걸친 ‘끈질긴’ 인터뷰 요청 끝에 가까스로 성사된 자리였다. 그만큼 그분은 노년의 나이에도 바쁜 스케줄로 정신이 없으셨다. 사전에 비서로부터 인터뷰 시간을 30분 이내로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시작된 소강과의 대담은 그러나 3시간을 훌쩍 넘겨 진행됐다. 묻고 듣는 즐거움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인터뷰를 마치자 소강은 지하에 있는 자신의 소장품 전시실로 안내했다. 실로 놀라운 규모였다.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스포츠관련 자료들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청와대 식단표까지 다방면에 걸쳐 수집한 컬렉션은 한국현대사의 기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방대했다. 소강의 컬렉션 가운데 3만점 가량이 수원시에 기증돼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수원은 소강의 학창시절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다. 개성출신인 그는 이곳에서 수원고등농림학교(서울농대 전신)를 다녔다. 소강은 타계하기 직전까지 테니스를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자리에서 자신의 별호가 ‘베리 베리 씽씽’이라고 들려주던 모습이 생각난다. 별호가 말해주듯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으로 걸음마저 천천히 걷는 법이 없었다. 평소 ‘영원한 체육인’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소강. 한국체육의 산실인 태릉선수촌을 지었고 자신의 아호를 따 테니스대회를 창설하는 등 후진양성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뿐만 아니다. 국회부의장, 문교부장관, 약사회장, 마약퇴치본부장, 장학재단 이사장, 남북조절위원장 등을 지내면서 남긴 족적은 두둑한 배짱만큼이나 뚜렷하다. 소강이 문교부장관 시절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의 기억으로 아직도 ‘민관식’하면 ‘문교부장관’이 연상될 정도다. 이번 ‘소강 민관식과 그의 컬렉션’ 전시회를 계기로 소강을 추억하는 거리 조성이라든지, 대회 창설 등 보다 구체적인 기념사업이 검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