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를 밥보다 더 좋아했고. 생전에 유고(遺稿)시집을 낸 우리 문단의 기인(奇人) 천상병(千祥炳,1930~1993) 시인. 누군가는 시인을 가리켜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라고 했다. 이 얼마나 마땅한 표현인가. 시인을 설명하는데 있어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다는 생각이다. 평생 시를 업(業)으로 살다 지상에서의 ‘소풍’을 끝내고 ‘귀천(歸天)’해 천상(天上)의 시인이 된 사람. 그가 떠난 지도 어느덧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알려진 대로 천상병은 김관식, 고은과 함께 ‘문단의 3괴’로 꼽힌다. 술을 좋아했고, 만나는 사람에게 특유의 ‘손바닥 인사’로 용돈을 타냈다든지.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른 일, 이로 인한 극심한 고문 후유증과 영양실조로 행려병자가 돼 그의 소재를 알 수 없던 문우들이 유고시집 ‘새’를 발간하는 해프닝 등등. 그리고 그를 간호하던 친구 여동생인 목순옥 여사와의 결혼도 빼놓을 수가 없다. 그의 범상치 않은 인생유전은 초기 시가 우주의 근원과 죽음의 피안(彼岸), 인생의 비통한 현실을 노래했다면 말년에 이르러서는 아무런 수식 없이 동화처럼 맑고 간결한 시들을 발표한데서도 알 수가 있듯 그야말로 ‘천상’ 시인이었다.
‘저승 가는 데도 / 여비가 든다면 / 나는 영영 / 가지도 못하나?' 살아서 노잣돈을 걱정했던(?) 시인은 죽어서도 일화를 남긴다. “88세까지 살라는 하늘의 계시를 들었다”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였다. 그러나 간경화로 인한 투병 끝에 만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부의금으로 8백만 원 가량이 들어왔다고 한다. 목 여사로부터 그 돈을 맡게 된 시인의 장모는 궁리 끝에 아궁이에 돈을 감추었고. 이런 사실을 몰랐던 목 여사는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말년을 살았던 의정부시가 시인을 추모하기위해 마련한 ‘천상병 예술제’가 7회째를 맞았다. 23일부터 30일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데 특히 예술제 기간 동안 시인의 유품과 시화를 비롯해 이외수, 중광스님의 그림을 전시하는 특별전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가 열린다. ‘괜찮다...’는 시인의 산문집 제목이기도 한데 요즘처럼 뒤숭숭한 때 위안삼아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