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산업재해 사고율은 창피스러운 일이지만 세계 최고수준이어서 경제규모로 세계 10위권이라는 위상이 무색할 정도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OECD 국가의 산업재해 비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말 현재 한국의 산업재해 사고사망 10만인율(10만명당 사망률)은 20.99명으로 21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삼성전자는 얼마 전 반도체 공장 근로자의 잇따른 백혈병 발병 논란과 관련해 모든 의혹을 씻고자 작업 환경 등에 대한 재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그동안 백혈병 문제를 제기해온 모임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노무전문가는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발병 근로자들이 산업재해(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삼성전자의 집계로는 지난 13년간 반도체 공장 근로자 가운데 22명이 백혈병이나 림프종에 걸려 10명이 숨졌는데 산재 인정을 못 받아 법정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근로자 측으로서는 산재 인정을 통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느냐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따라서 산재가 여전히 많이 발생하고, 재해의 종류도 다양해지는 상황에 비춰 산재 인정을 둘러싼 법적 분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산업 현장에서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은 근로자는 1천401명이고, 부상자를 포함한 전체 산재자 수는 10만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또한, 경제적 손실도 막대하다. 2008년에 산재로 입은 경제적 손실액은 17조1천억원으로 추정됐는데 이는 그해 파업으로 인한 생산과 수출 차질로 입은 손실액 1조4천억원의 10배가 훨씬 넘는다.
우리나라가 ‘산재 후진국’의 오명을 씻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보다도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과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재작년 1월 이천의 한 냉동창고에서 일어난 화재사고로 40명이 사망했지만 이사고로 징역형에 처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2008년 한 해 동안 근로자 사망 등 중대한 재해로 처벌된 사업주 2천358명 중 구속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정부의 산업안전시설 점검과 감독체제가 과연 경제규모에 걸맞은지도 세밀하게 되짚어볼 일이다. 우리나라는 감독관 1명이 사업장 4천800여 곳을 감독해야 한다. 내실있는 산재 예방과 감독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긴요하지 않은 전시성. 홍보성 예산을 줄여서라도 우선 해당 인력의 단계적 확충에 나서야 하지 않겠나.